짧은 전기 –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1880~1918)는 프랑스의 시인이자 현대시의 선구자입니다. 시가 그림을 이루는 '캘리그램(Calligramme)'이라는 새로운 시 형식을 창시한 인물이며, '큐비즘'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든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는 프랑스 시가 가장 역동적으로 변모하던 시기를 살았습니다. 상징주의가 저물어 가던 시대를 지나,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 세상을 떠난 그는 제1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군대에 동원되었고, 포탄 파편에 머리를 다친 뒤 스페인 독감으로 38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기욤 아폴리네르, 미술 평론가이자 시인
1880년 8월 26일 로마에서 기욤 아폴리나리스 드 코스트로비츠키(Guillaume Apollinaris de Kostrowitzky)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신분이 확인되지 않은 이탈리아 장교로 추정되며, 그는 폴란드 귀족의 혈통을 이은 모친 손에서 자랐습니다. 이탈리아를 거쳐 코트다쥐르와 파리에서 성장한 그는 학문에 두각을 나타냈고, 라인란트의 노이글뤼크 성에서 가정교사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이 지역과 그곳의 민속은 이후 그의 시적 세계에 깊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애니 플레이든은 그에게 사랑의 설렘과 좌절을 동시에 안겨 주었고, 거절당한 이 사랑은 사후 출간된 시집 『사랑받지 못한 자의 노래』(1919)의 원동력이 됩니다. 파리로 돌아온 뒤 은행 직원으로 생계를 꾸리던 그는 화가 파블로 피카소, 작가 막스 자콥과 알프레드 자리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파리 예술계의 중심 인물로 자리 잡았습니다.
1910년부터 1914년까지 그는 신문 랑트라니자장(L'Intransigeant)에 실린 전시 평론을 집필했고, 1912년부터는 자신의 잡지 『파리의 저녁(Les Soirées de Paris)』을 발행하며 독자적인 예술관을 펼쳤습니다. 1911년경 '큐비즘'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도 바로 그였습니다. 또한 마리네티가 이끌던 이탈리아 미래파 화가들과도 교류하며, 기계를 통해 현대성의 역동성을 드러내는 새로운 미학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처럼 아폴리네르는 특히 『캘리그램』을 통해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합니다. 캘리그램이란 글자와 구절을 배열해 그림을 만들어 내는 시 형식을 말합니다.
캘리그램의 창시자
아폴리네르는 처음에는 상징주의 운동에 동조했지만, 점차 그 테두리를 벗어나 20세기 초의 혁신적인 예술 사조에 뛰어들었습니다. 삶의 고통, 특히 사랑의 아픔에서 우러난 그의 시 가운데 1898년부터 1912년까지 쓰인 작품들은 1913년 시집 『알코올(Alcools)』로 엮였습니다. 이 시집을 통해 아폴리네르는 프랑스 시의 장르 자체를 뒤흔들고 갱신했습니다. 운율은 느슨해졌고, 시행은 불규칙해졌으며, 그는 고전적인 시적 리듬을 과감하게 깨뜨렸습니다. 가장 파격적인 시도는 구두점을 완전히 없앤 것이었습니다.
입체파가 한창 발전하던 시기, 아폴리네르는 파리의 지적·예술적 삶의 한복판에서 활동했습니다. 훗날 『캘리그램』(1918)을 이룰 '시-대화(poèmes-conversations)'를 이 무렵부터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 『창에 꽂힌 비둘기와 물줄기』입니다. 비둘기는 순수, 즉 전쟁에 찔린 평화를 상징합니다. 시의 앞부분은 시인의 젊은 시절을 추억하며 사랑했던 소녀들의 '꿀 빠진 입술'을 노래하지만, '그러나'라는 전환과 함께 그 부드러운 이미지는 산산조각 납니다. 이어지는 물줄기는 전쟁터로 떠난 친구들, 시인들, 아방가르드 화가들을 떠올리게 하며, 전사(戰死)를 상징하는 협죽도 꽃은 피처럼 붉게 흩어집니다.
아폴리네르는 연극과 저널리즘에도 두루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시적 산문 『썩어가는 마술사』(1904), 단편집 『살해된 시인』(1916), 에로틱 소설 『어린 돈후안의 활약』(1907) 등 다양한 장르에서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의 시는 폴 엘뤼아르, 루이 아라공, 자크 프레베르 등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폴리네르와 전쟁
1914년 전쟁이 발발하자 아폴리네르는 자원 입대를 청했습니다. 아직 프랑스 시민권이 없었던 탓에 18개월이 지난 후에야 지원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전쟁 중 그는 용맹하게 싸웠습니다. 그는 보병들의 참혹한 참호 생활을 그들과 함께 견뎠지만, 그 고통을 사실적으로 폭로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공개하지 않은 시를 통해서만 마음의 상처를 달랬습니다.
그의 전쟁 시는 애국적이고 활기차며, 전쟁의 공포를 감싸고 삶을 찬미합니다. 동시에 전우를 잃은 아픔을 담아내기도 합니다. 1916년 3월 17일 전선에서 포탄 파편에 머리를 다쳐 천공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긴 요양 기간 동안 단편집 『살해된 시인』(1916)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신화적이면서도 자서전적인 성격을 지닌 단편과 이야기의 모음집입니다. 또한 극작 『티레시아스의 유방(Les Mamelles de Tirésias)』을 발표했는데, 이 '초자연주의' 드라마는 훗날 앙드레 브르통이 '초현실주의'라 명명한 사조의 선구로 평가됩니다. 그리고 휴전을 이틀 앞둔 1918년 11월 9일, 스페인 독감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장례 행렬은 파리의 승전 퍼레이드와 마주했습니다.
참고문헌
- Guillaume Apollinaire, 전기. 로랑스 캉파(Laurence Campa) 지음. 갈리마르, 2013.
- 아폴리네르, 두 해안 사이의 시인. 필립 보네(Philippe Bonet) 지음. 블루 & 옐로우 에디션(Bleu & Jaune Éditions), 2018.
- Guillaume Apollinaire: 전쟁 전기 1914-1918. 아네트 베커(Annette Becker) 지음. 탈랑디에,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