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칠페릭 1세 (539~584): 네우스트리아의 야심찬 왕과 비극적 최후

칠페릭 1세 (539~584)

칠페릭 1세 (539~584): 네우스트리아의 야심찬 왕과 비극적 최후

칠페릭 1세는 프랑크 왕국 메로빙거 왕조의 왕으로, 클로타르 1세의 막내아들이자 형제들 중 가장 야심찬 인물이었다. 561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왕국이 분할 상속되면서 그는 네우스트리아를 다스리게 되었고, 왕국의 핵심 도시였던 파리의 왕실 보물마저 손에 넣으려 했다.

갈스윈타와의 결혼, 그리고 프레데군드와의 불륜

칠페릭은 서고트 왕국의 공주 갈스윈타와 정략결혼을 했다. 갈스윈타는 훗날 오스트라시아의 왕비가 되는 브륀힐드의 자매였다. 그러나 칠페릭은 이미 하녀 출신의 정부(情婦) 프레데군드와 밀애를 이어가고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은 젊은 왕비를 제거하기로 모의했고, 갈스윈타는 질식사하는 비극을 맞이한다.

형제 간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 다툼

갈스윈타의 죽음은 단순한 왕가 스캔들로 끝나지 않았다. 동생을 잃은 브륀힐드는 남편인 오스트라시아의 왕 지게베르트에게 복수를 촉구했고, 이로 인해 지게베르트와 칠페릭 사이에 장기간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칠페릭은 형인 부르군트의 왕 곤트랑의 지원을 받으며 맞섰다.

그러나 승기를 잡아가던 지게베르트는 575년, 프레데군드가 보낸 두 명의 자객의 손에 암살당하고 만다.

잔혹한 왕의 최후

칠페릭은 무자비함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는 브륀힐드와 결혼한 자신의 아들조차 용서하지 않고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당대의 역사가 그레고리우스 드 투르는 그를 "시대의 네로이자 헤로데스"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584년, 사냥에서 돌아오던 길이던 칠페릭은 낯선 자에게 습격당해 팔겁창(스카마삭스)이 겨드랑이에 꽂히는 방식으로 암살당했다. 흥미롭게도 이는 지게베르트가 살해당한 것과 같은 수법이었다. 그의 죽음 역시 프레데군드의 음모라는 의혹이 제기되지만, 진범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