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여왕이자 그 아름다움으로 전설이 된 네페르티티(기원전 약 1370년~1333년)는 남편이자 유명한 파라오 아케나텐 곁에서 정치와 종교 분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인물입니다.
불확실한 가계
네페르티티의 혈통은 확실하게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기원전 1370년경에 태어난 그녀는 파라오의 혈통과 별개의 계보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있으며, 파라오 아멘호테프 3세의 왕비이자 아케나텐의 어머니였던 티예 여왕의 조카, 즉 아케나텐의 사촌일 수도 있다는 추정이 있습니다. 뛰어난 미모로 유명했던 그녀의 이름은 '아름다운 자가 왔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네페르티티는 정확한 시기는 불분명하지만 파라오 아케나텐과 결혼하면서 '위대한 왕실 부인(Great Royal Wife)'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이 부부 사이에는 메리타톤, 마케타톤, 앙케세나몬, 네페르네루아톤 타셰리트, 네페르네루레, 세트펜레 등 여섯 명의 딸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여왕
출생과 즉위 과정에 대한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네페르티티가 수행한 중요한 정치적 역할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집트 역사상 그 어떤 왕비도 경험해 보지 못한 막중한 역할을 행사했던 어머니 티예의 선례에 영향을 받은 아케나텐은 정치적·종교적 권력을 자신의 왕비와 공유했습니다.
일부 고고학 유적지에서는 네페르티티의 조각상이 파라오와 같은 크기로 제작되어 있는데, 이는 그녀가 공동 섭정(co-regent)의 지위로 격상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카르낙에 위치한 아텐 신전에서는 그녀가 남편보다 거의 두 배 많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아케나텐과 함께 아텐 신에게 바치는 제의에 동석하기도 하고, 딸들인 메리타톤과 마케타톤과 함께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나아가 원래 파라오만을 위해 남겨두었던 장면들에도 등장하는데, 부조에는 적들을 징계하고 포로들이 옥좌를 장식하는 장면 속 네페르티티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녀 이전에는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티예조차 이러한 장면에 묘사된 적이 없었습니다.
미스터리한 실종
남편 통치 14년째 되던 해(기원전 1339년경), 네페르티티는 당대의 회화와 조각 등 도상학적 기록에서 거의 완전히 사라집니다. 이후 그녀의 딸 메리타톤이 공식 의식에서 위대한 왕실 부인으로서 그녀의 자리를 대신하게 됩니다. 이 갑작스러운 실종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설이 제시되어 왔습니다. 질병이나 폭력으로 인한 돌연사, 혹은 실각설까지 있었으나, 실각설은 현재 학계에서 배제된 상태입니다.
반면 일부 자료에 따르면 네페르티티는 남편이 사망한 시점(기원전 1338~1337년경)에도 생존해 있었으며 여전히 왕비의 직책을 수행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실제로 아케나텐 사후 잠시 통치한 후계자는 안크케페루레 네페르네루아텐이라는 인물입니다. 이 인물은 여성으로, 정확한 신원은 불확실하지만 전문가들의 가설에 따르면 네페르티티 본인이거나 그녀의 딸 메리타톤일 수 있다고 합니다.
오늘날까지도 네페르티티의 무덤은 발견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어, 그녀의 마지막 행적은 여전히 고고학계 최대의 미스터리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