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뒤 샤틀레(Émilie du Châtelet)는 수학자이자 물리학자로, 그녀가 번역한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프린키피아)』 프랑스어판은 오늘날까지도 권위 있는 표준 번역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저서 『행복 담론』의 저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남다른 총명함을 보인 어린 시절
1706년 12월 17일, 브르퇴유 남작 루이 니콜라 르 토넬리에의 딸로 태어난 가브리엘 에밀리는 어린 시절부터 개방적이고 지적인 문화 환경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녀의 집에는 시인과 학자들이 자주 드나들었고, 어린 에밀리는 손님들과의 대화에 함께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당시 여성에게는 매우 드물었던 폭넓은 교육 기회를 직접 마련해 주었으며, 그녀는 라틴어, 그리스어, 독일어는 물론 음악과 연극까지 배웠습니다. 덕분에 에밀리는 어린 나이에 남다른 학업 재능을 드러냈습니다.
열여섯 살에 궁정에 데뷔한 그녀는 화려한 궁정 생활에 빠르게 매료되어 한동안 사치와 외양의 과시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했습니다. 열여덟 살에는 플로랑 클로드 뒤 샤틀레 후작과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뛰어난 지적 능력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스스로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너그럽게 내버려 두었습니다.
천재 수학자로 우뚝 서다
에밀리 뒤 샤틀레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세 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한편으로는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습니다. 특히 철학자 볼테르와의 관계로 유명한데, 볼테르는 그녀에게 깊은 영향을 준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거의 남성만의 영역이었던 물리학과 수학을 더 깊이 공부하도록 격려했으며, 오히려 그런 분야에서는 자신이 그녀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여길 만큼 그녀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볼테르는 모든 면에서 그녀를 자신과 대등한 존재로 대해 주었고, 그 뛰어난 지성을 아낌없이 찬사했습니다.
에밀리는 라이프니츠의 철학을 깊이 연구했고,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과 활발히 교류했습니다. 볼테르의 권유에 따라 아이작 뉴턴 저작의 번역에 착수했으며, 완성된 이 번역본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프랑스어판의 표준으로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라이프니츠 철학에 관한 이론과 저술, 불의 본질에 관한 연구, 종교와 신에 대한 성찰 등 다채로운 글들을 남겼습니다.
그녀는 운동 에너지가 질량과 속도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입증한 업적으로도 유명합니다. 이는 당시 통용되던 '운동 에너지는 속도에 비례한다'는 통념을 바로잡은 중요한 발견으로, 과학사에서 그녀의 위치를 굳건히 해 준 성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짧지만 눈부신 삶의 끝
1749년, 에밀리 뒤 샤틀레는 출산 도중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42세였습니다. 그녀가 남긴 뉴턴의 번역본은 사후인 1759년에 출간되어 프랑스 계몽주의 과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