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사리 싱(바라하트)은 인도 라자스탄 출신의 저명한 시인이자 혁명가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삶은 영광만큼이나 깊은 상실의 역사이기도 했다.
두 번째 거대한 타격, 아내 마니크 쿤와르의 죽음
아내 마니크 쿤와르(Manik Kunwar)는 1927년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케사리 싱의 나이는 겨우 55세였다. 혁명가의 길을 걷던 아들 프라탑의 순국에 이은 두 번째 거대한 타격이었다. 그는 한동안 세상 모든 것에서 마음이 떠나버린 듯했다. 그는 아내를 추모하며 산스크리트로 다음과 같은 찬가를 남겼다.
Adayapi twan kanakachampakadam Gauri,
Phallarandinayanam Patipadraktam.
Devi Prasannavadanam Rasdivyadharan,
Praneshwari Mam 'Mani' Parchintayami..
즉, "금빛 참파화 꽃다발처럼 고운 피부에, 활짝 핀 연꽃 같은 눈동자를 지닌 나의 생명의 여신 '마니'. 남편의 발에 대한 정성으로 빛나고, 늘 환한 미소를 띠며, 행동마다 신성하고 달한 윤택함이 흐르는 그대여! 나는 지금도 그대를 기억합니다."
Adyapi Pavanchirayasvinin Twaan,
Shakti Swarup Tapasahtejpunjam.
DhiramudattagunaGauravManditangi,
Veeran Prajapajanini Satnam Smrami.
즉, "청결한 성품과 명예를 지녔으며, 힘과 인내, 용기와 빛남이 넘치고, 높은 덕성의 위엄으로 단장된 영웅의 어머니요 백성의 어머니인 그대여! 나는 지금도 그대를 기억합니다."
시로 담아낸 사랑과 헌신
케사리 싱은 마니크 쿤와르에게 바치는 글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불행한 삶들은 사랑의 길 위에서 흩어져 사라지고,
진실한 연정만이 나의 사랑으로 남는다.
허영에 가린 세상을 바라보던 그 눈동자의 미소,
그녀는 환상을 걷어내는 불꽃의 화신이었다.
이기심의 땅에서 방황하던 내게
그 시행(詩行)들은 신성한 경지의 안식처였다.
이제 좋은 날은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고,
슬픔 또한 없다고 알면서도 마음은 허전하기만 하다.
또 다른 구절에서 그는 깊은 감정을 담아 이렇게 썼다.
무서운 진실이야말로 사랑의 계곡이다.
이 세상 풍속은 모든 사랑에 이익만을 바란다.
육신이라는 흙 때문에 영웅의 갈림길에는 좀처럼 다다르지 못하고,
목숨을 바치지 않고서는 어둠의 장막은 찢어지지 않는다.
사랑의 형태로 절대자를 예배하라, 행복의 등불이 빛난다.
'마니'를 얻은 이 목숨은 값진 것이다, 이것이 사랑의 본질이다.
마니크 쿤와르에게 바친 또 한 편의 글에서 케사리 싱은 이렇게 적었다.
미모와 젊음, 탐욕에 현혹되어 기뻐하는 자들,
사랑을 더럽히며 이기심에 빠져든다.
사랑의 시냇물이 끊이지 않는 감미로움 속에 흐르게 하라.
마음은 하나의 생명이 되고, 몸은 떨어져 있어도 하나가 된다.
사랑과 무질서는 기만이 뒤섞인 색일 뿐,
무욕한 헌신만이 모든 차별을 드러낸다.
나의 '마니' 같은 사랑은 다시 만나지 못한다.
그 사티(정절) '마니'의 품성 위에 나는 목숨을 바친다.
오늘의 청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이 시들은 오늘날 청년들에게 커다란 메시지를 전한다. 나라를 위해 피로 물든 혁명의 길을 걷고, 감옥살이를 감수하며, 아들과 아내까지 혁명의 제단에 바친 한 남자가 아내를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어떤 문명인이라도 눈시울이 촉촉해지지 않을 수 없다.
부부 생활의 행복은 헌신에 그 기초를 둔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헌신하고 믿음을 지킬 때, 비로소 삶의 진정한 기쁨이 열린다.
행복한 부부 생활의 증거
케사리 싱의 시들은 그와 마니크 쿤와르가 행복하고 화목한 부부 생활을 나누었다는 살아 있는 증거다. 케사리 싱은 운문 자서전에서 아내 마니크 쿤와르의 죽음을 애도하며 이렇게 썼다. "라마 신께서도 사랑하는 아내와의 이별에 눈물을 흘리셨다. 하물며 나 같은 보통 사람이야 오죽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