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롤라인 루크레티아 허셜(Caroline Lucretia Herschel, 1750~1848)은 독일 출신의 영국 천문학자입니다. 그녀는 여러 신혜성을 발견했으며, 그중 하나는 그녀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습니다. 남성 중심이던 18세기 과학계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역사에 남은 최초의 여성 천문학자 중 한 명입니다.
집안 살림을 도맡던 소녀
캐롤라인 허셜은 1750년 3월 16일 독일 하노버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이삭 허셜과 어머니 안나 일제 사이에서 열 명의 자녀 중 다섯째였습니다. 열 살 때 장티푸스를 앓으면서 성장이 멈추었고, 작은 체구 때문에 가족들은 그녀가 평생 시집도 못 가고 하녀 노릇밖에 못 할 것이라 여겼습니다.
1767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캐롤라인은 집안의 살림, 특히 부엌일을 도맡았습니다. 그러던 중 10년 전부터 영국에 거주하며 오르간 연주자이자 음악 교사로 활동하던 오빠 윌리엄이 함께 살자고 초대했고, 그녀는 즉시 기회를 잡았습니다. 바스에서 오빠에게 성악을 배우며 가수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프로페셔널 천문학자로
윌리엄은 취미로 천문학에 깊은 흥미를 갖게 되었고, 캐롤라인도 오빠의 열정에 동참했습니다. 처음에는 보조 역할을 했지만 점차 자신만의 관측을 시작했습니다. 1781년 3월 13일, 윌리엄은 토성 너머에서 새로운 행성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조지우스 시두스(Georgium Sidus)'라 불렸으나, 결국 신화 속 토성의 아버지의 이름을 따 '우라누스'로 명명되었습니다. 이듬해 윌리엄은 국왕 조지 3세의 궁정 천문학자가 되었고, 남매는 윈저 성 근처로 이주했습니다.
캐롤라인은 이후 가수의 길을 접고 천문학에 헌신했습니다. 오빠를 보조하는 한편 자신의 연구도 병행했습니다. 1781년부터 1797년까지 무려 7개의 혜성과 3개의 성운을 발견했으며, 1787년에는 조지 3세로부터 정기 급여를 받게 되면서 최초의 프로페셔널 여성 천문학자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발견한 혜성 중 하나는 '허셜-리고레 혜성(35P/Herschel–Rigollet)'으로, 오늘날까지 그녀의 이름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1788년 5월, 오빠가 젊은 미망인 메리 피트와 결혼하면서 캐롤라인은 이사해야 했습니다. 서운함이 컸고, 자신의 집에서 쫓겨난 듯한 느낌을 받아 남매 사이가 한동안 어색해졌습니다. 그러나 올케 메리는 캐롤라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썼고, 두 사람의 관계는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1822년 윌리엄이 세상을 떠나자 캐롤라인은 고향 하노버로 돌아가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1828년 영국 왕립천문학회로부터 금메달을 수상했는데, 이는 베라 루빈이 1996년에 수상하기 전까지 그녀가 유일한 여성 수상자였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1846년에는 프로이센 왕립과학원으로부터도 금메달을 받았습니다.
캐롤라인 허셜은 1848년 1월 9일 하노버에서 9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가정 살림에서 시작해 밤하늘의 혜성을 읽어내기까지, 그녀의 인생은 끊임없는 호기심과 열정이 만들어낸 위대한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