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즈-엘리자베스 비제(Louise-Élisabeth Vigée), 통칭 마담 비제 르 브룬(Madame Vigée-Lebrun, 1755~1842)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위대한 화가이자 뛰어난 초상화가였습니다.
일찍 재능을 드러낸 신동 화가

엘리자베스 비제는 1755년 4월 16일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농민 출신이었고 아버지는 파스텔 화가였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 농부 집에 맡겨져 자랐고, 6세 무렵 트리니테 수도원 학교의 기숙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이미 이 시기부터 그림을 즐겨 그렸으며 남다른 재능을 보였습니다.
11세에 수도원을 떠나 부모 곁으로 돌아온 그녀는 아버지에게서 파스텔 기법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다음 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깊은 상실감에 빠진 소녀는 그림과 파스텔에 대한 열정 속에서 위안을 찾았습니다. 가족과 친분이 있던 화가 가브리엘 프랑수아 도옌(Gabriel-François Doyen)은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화가의 길로 나아가도록 격려했습니다.
14세부터는 화가 가브리엘 브리아르(Gabriel Briard)에게 본격적으로 사사받으며 실력을 빠르게 키워 나갔습니다. 당대 여러 화가들과 교류하며 조언을 얻었고, 타고난 재능을 갈고닦아 점차 초상화 의뢰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15세에 프로 화가로 자리 잡은 그녀는 수많은 초상화 의뢰를 받았습니다. 베르됭 후작부인(Madame de Verdun)과 부르봉팡티에브르 가문의 루이즈 아델라이드(Louise Adélaïde de Bourbon-Penthièvre) 등 귀족 여성들의 후원 아래 명성을 쌓았습니다. 1775년에는 왕립 아카데미에 두 점의 초상화를 제출했고, 그 대가로 공개 세션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776년에는 재능 있는 미술상 장바티스트 피에르 르 브룬(Jean-Baptiste-Pierre Le Brun)과 결혼했는데, 남편은 아내의 경력 발전에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같은 해 그녀는 궁정에서 작업할 자격을 얻었습니다.
궁정 공식 화가

엘리자베스 비제 르 브룬은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후원을 받으며 그녀의 공식 궁정 화가가 되었습니다. 뛰어난 실력 덕분에 그녀의 성공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고, 1783년에는 왕립 회화·조각 아카데미(Académie Royale de Peinture et de Sculpture)의 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명성이 높아질수록 그녀는 사생활에 관한 험담과 소문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엘리자베스는 딸 줄리(Julie)를 데리고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러시아로 망명길에 올랐습니다. 그녀의 명성은 이미 국경을 넘어 널리 알려져 있었기에 어디에서든 환영받았고, 유럽 각국의 궁정에 머물며 계속 그림을 그리고 초상화를 제작했습니다. 1800년에야 망명자 명단에서 삭제되어 귀국 길이 열렸고, 2년 뒤 프랑스로 돌아왔지만 더 이상 그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다시 여행을 떠났습니다. 1809년부터는 파리와 루베시엔느(Louveciennes)를 오가며 그림을 계속 그렸고 살롱을 운영했습니다.
1835년, 그녀는 회고록 『추억(Souvenirs)』을 출간했습니다. 이 저술은 당대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 주는 귀중한 기록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비제 르 브룬은 1842년 3월 30일 파리에서 생을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