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테루아뉴 드 메리쿠르(Théroigne de Méricourt), 프랑스 혁명의 붉은 아마존

안주조프 테르바뉴(Anne-Josèphe Terwagne), 통칭 테루아뉴 드 메리쿠르(Théroigne de Méricourt, 1762~1817)는 프랑스의 정치인이자 프랑스 혁명기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여성들의 행진

테루아뉴 드 메리쿠르(Théroigne de Méricourt), 프랑스 혁명의 붉은 아마존테루아뉴는 1762년 8월 13일 벨기에 마르쿠르(Marcourt)에서 노동자 피에르 테르바뉴와 엘리자베트 라예 사이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일찍 잃은 그녀는 친척들에게 맡겨졌다가 이후 수녀원에 보내집니다. 열두 살에 재혼한 아버지 곁으로 돌아왔지만 계모와 사이가 좋지 못해 이듬해 집을 뛰쳐나왔고, 이후 목동, 하녀, 귀부인의 시녀로 지내며 갖은 고생을 겪었습니다.

성악가의 길을 꿈꾸며 여러 모험과 방황 끝에 파리, 런던, 이탈리아를 전전하던 그녀는 나폴리에 머무르던 중 프랑스 삼부회 소집 소식을 접하고 즉시 파리로 돌아갔습니다. '테루아뉴 드 메리쿠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으로, 그녀는 바스티유 감옥 습격에도 참여했습니다. 1789년 10월 5일부터 6일까지 수천 명의 여성들이 국왕을 파리로 데려오고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국민의 요구를 전달하기 위해 베르사유로 행진했을 때도 그녀는 현장에 있었지만, 폭력에는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리에주의 여인

아마존풍 복장을 입고 다닌 탓에 '붉은 아마존', '아름다운 리에주 여인(la Belle Liégeoise)', '지롱드의 분노' 등 다양한 별명으로 불린 테루아뉴 드 메리쿠르는 살롱을 운영했으며, '법의 친구 클럽(Club des Amis de la loi)'을 직접 창설해 훗날 코르들리에 클럽과 합류시켰습니다. 의회의 활동을 스스로 익히고 이를 민중에게 널리 알리고자 노력한 그녀는 공개 포럼에서 주저 없이 의견을 개진하며 저명한 인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러나 1790년 말 빚에 시달리고 언론의 공격 대상이 되면서 그녀는 벨기에로 돌아갑니다. 이후 마리 앙투아네트 암살을 모의했다는 혐의를 쓴 그녀는 1791년 2월 15일 밤 체포되어 오스트리아의 요새에 수감되었고, 아홉 달 뒤 석방되어 다시 파리로 돌아왔습니다.

요양원행, 그리고 최후

1792년 1월 그녀는 자코뱅 클럽에 합류했으며, 공화주의자이자 페미니스트로서 왕당파와 부르주아지에 맞서 강하게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같은 해 봄에는 전쟁 국면을 맞아 '아마존 부대' 창설을 추진했고, 8월에는 튈르리 궁 습격에 가담해 선전문 작가 쉴로(Suleau)를 규탄하는 군중을 선동했습니다. 1793년 5월, 국민의회에서 자코뱅파 여성들은 그녀가 지롱드파 지도자를 지지한다며 공개적으로 그녀의 옷을 벗기고 매질을 가했는데, 이 굴욕적인 학대는 마라(Marat)가 개입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테루아뉴 드 메리쿠르는 정신적 붕괴를 겪었고, 결국 남동생에 의해 살펾리에르(Salpêtrière) 정신병원에 입원됩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23년을 보낸 끝에 1817년 6월 23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극적인 생애는 샤를 보들레르와 필립 세귀(Philippe Séguy)의 작품, 그리고 한 편의 오페라에 영감을 주었으며, 외젠 들라크루아의 명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모델이 되었을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