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왕'으로 불린 여성 군주, 조지아 황금기를 연 타마르 여왕

타마르(조지아어: თამარი, Thamar 또는 Tamara, 1160~1213)는 29년간 조지아를 통치한 군주입니다. 당대에 '타마르 왕'으로 불렸으며, 오늘날 조지아 역사상 가장 유명한 군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고모 루수단의 영향

타마르는 오세티아 국왕의 딸 부르두칸과 바그라티드 왕조 출신의 조지아 국왕 조지 3세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입니다. 그녀와 여동생 루수단은 특별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는데, 특히 조지 3세의 누이인 루수단 고모가 양육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외교관이었던 고모는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존재였는데, 당시 귀족들의 반란과 왕위 계승 분쟁으로 혼란스럽던 왕국의 운영에 깊이 참여했습니다.

고모의 영향력과 가르침 속에서 성장한 타마르는 어린 나이에도 총명함으로 주목받았고, 겨우 열두 살 때 아버지는 딸과 왕위를 함께 나누겠다고 선언했습니다. 1179년, 조지 3세는 약속대로 딸을 왕위에 연임시켜 공식 후계자로 지정했습니다. 남자 후계자가 없었던 그는 자신의 사후 딸이 왕위 계승 과정에서 겪게 될 어려움을 미리 막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조지아 귀족들은 그녀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타마르는 5년간 아버지와 함께 나라를 다스리다 1184년 4월 부왕이 서거하면서 단독 통치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조지아의 군주가 되다

24세의 젊은 나이에 타마르는 다시 조지아의 군주로 즉위했습니다. 그녀는 '왕'의 칭호로 불렸습니다. 왕의 배우자가 아니라 스스로 군주였기 때문입니다. 조지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왕관을 쓰자 반발의 목소리가 컸고, 타마르는 저항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영향력 있는 루수단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젊은 군주는 귀족들에게 상당한 양보를 해야만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조지아 정교회의 카톨리코스 총대주교 미카엘 4세 미리아니스제를 재상으로 임명한 일이 있었습니다.

1185년에는 귀족들의 압박에 못 이겨 안드레이 1세 보골류프스키 공의 아들 유리와 결혼하여 그에게 국군 지휘권을 넘겨주었습니다. 유리는 용맹한 무인이었지만 성격이 험난해 부부 관계는 끝내 대립으로 치달았고, 젊은 여왕은 오히려 이 과정에서 점차 영향력과 독립성을 쌓아갔습니다. 미카엘 4세가 사망하자 그녀는 자신의 지지자로 후임을 임명했고, 즉위 당시 어쩔 수 없이 기용했던 귀족들을 하나씩 자신의 동맹으로 교체해 나갔습니다. 1187년, 타마르는 남편의 음주 습관과 추문을 문제 삼아 귀족들에게 이혼 승인을 받아냈습니다. 콘스탄티노플로 추방된 유리는 두 차례 쿠데타를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습니다.

적극적인 팽창 정책

타마르는 두 번째 남편을 직접 선택했습니다. 상대는 오세티아 출신 왕자 다비드 소슬란으로, 두 사람 사이에서는 두 명의 자녀가 태어났습니다. 배우자 왕이 된 다비드는 아내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 실질적으로 조지아군을 이끌었습니다. 권력 기반이 공고해진 타마르는 선대 왕들의 팽창 정책을 이어받아 아제르바이잔, 투르키스탄, 바그라티드 왕조의 아르메니아 방면으로 세력을 뻗어나갔습니다. 다비드는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조지아 왕국은 흑해에서 카스피해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타마르는 인접한 무슬림 국가들 사이에서 기독교를 확립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동방 기독교도들의 보호자로 자리매김하고자 했으며, 특히 성지의 기독교도들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예루살렘은 물론 이집트, 불가리아, 키프로스의 교회와 수도원 공동체를 아낌없이 후원했습니다. 1187년 살라딘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정복한 뒤에도 타마르는 다른 기독교 순례자들과 달리 조지아 순례자들에게 성지 통행의 특권을 얻어냈습니다. 또한 트라페준트 그리스 정교 제국의 건립을 적극 지원했습니다. 조지아 내에서는 왕국 수입의 10분의 1을 빈민 구제에 바치고 복지 시설을 설립하는 등 백성을 보살폈습니다.

다비드는 1207년경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아들 조지 4세 라샤를 공동 통치자로 세운 후, 타마르는 1213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통치 말기에 조지아는 중동에서 명성과 영향력이 절정에 달한 황금기를 맞이했습니다. 부유해진 왕국은 영토를 넓혔고, 이웃 나라들 사이에 속국과 동맹국을 거느렸으며 상업과 문화가 크게 융성했습니다. 타마르는 오늘날까지 조지아 역사상 가장 빛나는 군주로 기억되고 있으며, 조지아 사도 정교회에 의해 성녀로 시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