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마르크 기욤 알렉시스 바디에(1736~1828): 프랑스 혁명의 그림자

마르크 기욤 알렉시스 바디에(1736~1828): 프랑스 혁명의 그림자

마르크 기욤 알렉시스 바디에는 프랑스 혁명기의 가장 극단적인 시기를 관통한 정치가입니다. 제3신분 대표로 삼부회에 선출되었을 당시의 그는 과묵하고 소박한 인물로 비춰졌지만, 혁명이 격화될수록 그 본색을 드러내게 됩니다.

국민공회와 국왕 사형

국민공회가 소집되자 바디에는 루이 16세의 사형에 찬성표를 던지는 등 결정적인 순간마다 강경한 혁명파의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한때 조용히 지내던 의원은 이제 혁명 정권의 운명을 좌우하는 인물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총안전위원회와 공포정치

1793년 9월, 그는 총안전위원회에 합류하며 혁명 체제의 핵심 권력 기구에 진입했습니다. 공포정치기 동안 바디에는 매우 적극적으로 활동했으며, 특히 온건파 세력인 '관용파(앵뒬르장)'를 숙청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단란주의자들을 밀고하고 재판으로 몰아넣는 과정에서 그의 이름은 공포 그 자체처럼 여겨졌습니다.

테르미도르의 반동

그러나 권력의 역설은 곧 그 자신에게도 찾아왔습니다. 바디에는 로베스피에르와 결별하였고, 1794년 7월 테르미도르 쿠데타를 주도하여 자신이 키워낸 공포정치의 최고 권력자를 무너뜨리는 데 앞장섰습니다.

하지만 테르미도르 이후 정국은 급격히 뒤집혔습니다. 바레르, 비요바렌, 콜로 데르부아 등과 함께 '전직 테러리스트'로 지목되어 추적당한 그는 신변을 숨긴 끝에 간신히 해외 추방만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몰락과 말년

이후 바디에는 바뵈프가 주도한 '평등파 음모'에 연루되어 다시금 감옥에 갇혔고, 1799년에야 비로소 자유를 되찾았습니다. 나폴레옹 시대를 조용히 보낸 그에게 최후의 타격은 왕정복고와 함께 닥쳤습니다. 1816년, 그는 '왕 살해자(레지시드)'라는 죽목에 오르며 공식적으로 추방령을 받고 정치적 존재 자체가 말소되었습니다. 바디에는 1828년, 혁명의 격랑을 모두 겪은 채 생을 마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