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나라 초대 황제 고조(高祖) 이연(李淵)의 딸, 평양공주(平陽公主, 598~623)는 스스로 여군 '낭자군(娘子軍)'을 조직하고 직접 전장에 나서 아버지의 권력 장악에 결정적인 힘을 보탠 인물입니다.

수나라 시대
평양공주는 598년 중국에서 태어났습니다. 당국공(唐國公) 이연과 그의 아내 돈씨(竇氏) 사이에서 태어난 다섯 자녀 중 둘째였습니다. 당시 중국은 오랜 분열기를 끝내 통일을 이룬 수나라의 통치 아래 있었습니다. 수나라를 연 문제(文帝) 양견(楊堅)은 남조를 정복하고 도성을 대흥(大興, 훗날 장안, 오늘날 시안)으로 정했습니다.
604년에는 양제(煬帝)가 아버지의 뒤를 이었습니다. 그는 대운하와 만리장성 같은 대규모 토목 사업을 계속 밀어붙였고, 전쟁 함대 건설 같은 새로운 사업도 벌였습니다. 고구려를 굴복시키려 여러 차례 원정을 감행했지만 이는 모두 막대한 인명 피해로 끝난 실패였습니다. 무리한 대형 사업은 제국 경제를 짓누르고 노동자들을 지치게 만들었으며, 결국 전국 각지에서 반란이 잇따르는 국면으로 치달았습니다.
이런 격변의 시기에 성장한 평양공주의 어린 시절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습니다. 아버지 이연은 그녀를 자신보다 열 살 위의 장군 시소(柴紹)에게 시집보냈고, 두 사람 사이에는 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반란과 당나라 건국
617년, 태원(太原) 방어를 책임지던 이연은 수 양제에 대한 반란을 계획합니다. 이연의 둘째 아들이 즉위한 뒤에 편찬된 전통 기록들은 반란의 실질적 주모자가 훗날 태종(太宗)이 되는 이세민(李世民)이었으며, 그가 아버지를 설득해 거병을 결심하게 만들었다고 전합니다.
이연은 돌궐의 공격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소집하고 아들들과 사위 시소를 소환했습니다. 아버지가 황제를 폐위하고 손자 양유(楊侑)를 옹립하겠다는 목표로 거병을 선언하는 동안, 평양공주는 몰래 자신의 재산을 처분해 수백 명의 부하를 확보했습니다. 이후 하인 마삼보(馬三寶)의 도움으로 각지 반란군 두목들과 동맹을 맺고 그들이 자신의 진영에 합류하도록 설득했으며, 인근 도시들을 공격해 차례로 점령했습니다. 이렇게 그녀는 무려 7만 명 규모의 '낭자군'을 조직하는 데 성공합니다.
딸과 사위, 아들들이 지휘하는 군대의 힘을 등에 업은 이연은 수도 장안을 점령하고 황제의 손자인 공제(恭帝)를 옥좌에 앉혔습니다. 618년 6월 수 양제는 장군 우문화급(宇文化及)에게 암살되었고, 공제는 공식적으로 이연에게 제위를 넘겼습니다. 이연은 권력을 장악해 새 왕조의 이름을 당이라 하고 스스로 황제 고조에 올랐습니다. 공제의 형제가 권력을 내세웠으나 강제로 폐위된 뒤 619년 암살되고 말았습니다.
이른 죽음
아버지가 제위에 오른 뒤 평양공주가 더 이상 전투에 참여했다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녀는 623년, 겨우 24~25세의 나이로 요절했습니다. 아버지 고조는 딸을 위해 대규모 군례(軍禮) 장례를 거행하라고 명했습니다. 여인에게 그런 예우를 갖추는 것은 지나치다는 반대 목소리가 나왔지만, 사료에 따르면 고조는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공주는 우리가 수나라를 전복하는 데 일조할 군대를 직접 조직했다. 그녀는 수많은 전투에 참전했고, 그 공헌은 당나라 건국에 결정적이었다. 공주는 보통 여자가 아니었다."
참고 자료
평양공주 위키피디아(영문)
Pingyang (c.600–623) – The Princess Who Toppled a Dynas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