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샬롯 브론테: 자매 중 맏딸이자 영국 문학을 빛낸 거장

에밀리와 앤의 자매인 샬롯 브론테(Charlotte Brontë, 1816~1855)는 영국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그녀의 이름을 영원히 빛내는 대표작은 단연 《제인 에어》입니다.

유년기의 상처

목사이자 작가였던 패트릭 브론테와 마리아 브랜웰의 딸로 태어난 샬롯은 1816년 4월 21일 잉글랜드 요크셔의 손턴에서 여섯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가 겨우 다섯 살이던 1821년 9월, 어머니는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824년에는 샬롯을 포함한 네 딸이 명성 높은 코언브리지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위생, 난방, 균형 잡힌 식사가 부족해 생활 환경이 극도로 열악했습니다. 1825년 두 언니인 마리아와 엘리자베스가 병을 심하게 앓게 되었고, 네 자매는 급히 학교에서 빼내졌지만 몇 주 뒤 마리아와 엘리자베스는 모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이 비극은 남은 브론테가의 아이들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깊은 상흔으로 남았습니다.

글래스타운 연방

샬롯은 자매들 사이에서 맏이가 되었고, 이모 엘리자베스 브랜웰의 손에서 자라났습니다. 아이들 사이에는 진정한 유대감이 형성되었는데, 그것은 무엇보다 문학으로 드러났습니다. 독서를 많이 한 그들은 '글래스타운 연방'이라 불리는 하나의 상상 속 세계를 만들어냈고, 신문, 희곡, 이야기, 시를 통해 그 지리와 조직, 역사까지 직접 창조해 나갔습니다.

1831년 샬롯은 수준 높은 기숙학교에 들어갔고, 이후 교사와 가정교사로 일하며 글쓰기에 대한 강한 열망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작가들에게 다가가려던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왔습니다. 그녀는 소녀들을 위한 기숙학교를 열 계획을 세우고, 1842년 여동생 에밀리와 함께 어학 연수 차 브뤼셀로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헤게 부인이 운영하는 헤게 기숙학교에 머물렀으며, 그녀의 남편 콩스탕탱 헤게는 샬롯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1845년 이모의 죽음으로 두 자매는 고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인 에어》

같은 해 샬롯은 우연히 동생 에밀리의 원고를 발견하고 그 완성도에 놀랐습니다. 그녀는 자매들이 함께 시집을 내자고 제안했고, 다음 해 《커러, 엘리스, 액튼 벨의 시집》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이후 앤과 에밀리는 각각 《애그니스 그레이》와 《폭풍의 언덕》을 발표했습니다. 첫 소설은 출판을 거절당했지만, 샬롯은 1847년 '커러 벨'이라는 필명으로 《제인 에어》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당시 일부에서는 스캔들처럼 받아들였지만 결국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샬롯은 세 번째 소설 《셜리》 집필에 착수했습니다.

1848년 9월, 알코올과 아편에 의존하던 오빠 브랜웰이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비극에 이어 같은 해 12월에는 에밀이, 1849년 5월에는 앤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연이은 불행 속에서 샬롯은 깊은 우울에 빠졌지만 집필을 멈추지 않았고, 작중 여주인공들은 점차 자매들의 모습으로 변해갔습니다. 이후 그녀는 많은 평론가들이 걸작으로 꼽는 《빌레트》를 완성했습니다.

1853년 목사 아서 벨 니콜스가 샬롯에게 청혼했습니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1854년 그와 결혼하여 몇 달간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병을 얻은 샬롯 브론테는 1855년 3월 31일, 불과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겨진 유산

샬롯 브론테는 짧은 생애 동안 빅토리아 시대 여성의 내면과 저항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가로 평가받습니다. 대표작 《제인 에어》는 오늘날까지 전 세계에서 읽히며 영화, 드라마, 연극 등 다양한 형태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그녀의 유품과 원고는 요크셔 호워스에 있는 브론테 파슨슈 박물관에서 만나볼 수 있으며, 관련된 더 자세한 정보는 위키백과의 샬롯 브론테 항목과 그녀의 작품 목록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