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칠데리크 2세(653~675): 젊은 나이에 왕좌에 올라 암살로 생을 마감한 메로빙거 왕

칠데리크 2세(653~675): 젊은 나이에 왕좌에 올라 암살로 생을 마감한 메로빙거 왕

출생과 가문

칠데리크 2세는 프랑크 왕국 메로빙거 왕조의 국왕으로, 클로비스 2세와 왕비 발틸드의 차남이었다. 그는 형 클로타르 3세가 네우스트리아와 부르군트를 통치하는 동안 동부 영토의 계승 문제와 얽히며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게 된다.

아우스트라시아 왕위 등극

아우스트라시아에서는 찬탈자였던 '양자 힐데베르트'와 그의 아버지이자 전직 궁재인 그리모알드가 반역죄로 처형되면서 정치적 공백이 생겼다. 이에 귀족들은 어린 칠데리크 2세를 아우스트라시아 왕좌에 앉혔다. 당시 그는 열두세 살 남짓의 소년이었으며, 실질적인 통치는 궁재 울포알드가 주도하는 체제 아래에서 이루어졌다.

673년, 프랑크 땅 전체의 지배자가 되다

673년 클로타르 3세가 사망하자 네우스트리아의 궁재 에브루앵은 티에리 3세를 후계자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 결정에 불만을 품은 대귀족들이 반기를 들었고, 그들은 인근의 강력한 군주였던 칠데리크 2세에게 자신들을 통치해 줄 것을 요청했다. 칠데리크 2세는 이에 응해 네우스트리아와 부르군트까지 장악하며 프랑크 왕국 전역을 다스리는 유일한 왕이 되었다.

정적에 대한 처벌

권력을 잡은 칠데리크는 저항의 중심이었던 에브루앵과 티에리 3세를 제거하는 조치를 취했다.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깎은 뒤 수도원에 유폐한 것이다. 메로빙거 왕조에서 긴 머리카락은 왕족만이 가질 수 있는 신성한 상징이었기 때문에, 머리를 자른다는 것은 곧 왕위 계승권을 박탈당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이러한 가혹한 처사는 에브루앵파의 깊은 원한을 남겼다.

사냥터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최후

칠데리크 2세의 통치는 오래가지 못했다. 675년, 그는 사냥을 나갔다가 부인 빌리힐트와 함께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었다. 그의 아내는 당시 임신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범인으로는 에브루앵을 지지하던 세력이 지목되며, 이는 몇 해 전 수치스럽게 유폐당했던 에브루앵에 대한 복수로 해석된다. 스물두 살의 젊은 나이에 비극적으로 최후를 맞이한 그의 죽음은, 궁재들의 실권이 왕권을 위협하기 시작한 메로빙거 왕조 말기의 혼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