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세귀르 백작부인 소피 로스톱친(Sophie Rostopchine): 프랑스 아동문학 고전을 남긴 작가

소피 로스톱친, 세귀르 백작부인(1799~1874)은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 여성 문필가로, 도덕성이 강한 그녀의 저작들은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불멸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러시아에서의 유년기

소피 로스톱친은 1799년 8월 1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몽골계 혈통을 지닌 러시아 귀족 가문의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 카트린 프로타소바는 예카테리나 2세 황후의 시녀 출신이었으며, 아버지 표도르 로스톱친 백작은 차르 파벨 1세의 외무장관을 지냈습니다. 파벨 1세는 소피의 대부이기도 했습니다.

소피는 모스크바 근교의 넓고 부유한 영지에서 유년기를 보냈으며, 프랑스어를 포함한 여러 외국어를 익히는 귀족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학대를 당했고, 잦은 체벌과 더불어 가톨릭으로 개종하도록 강요당하는 고통도 겪었습니다.

1812년 나폴레옹 군대가 모스크바로 접근할 무렵, 소피의 아버지는 모스크바 총독으로 재직 중이었습니다. 프랑스군이 입성하자 표도르 로스톱친은 도시에 불을 지르게 하고 자신의 저택에도 불을 질러 적군의 후퇴를 강요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주민들의 원망을 샀고, 차르의 신임을 잃어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 마침내 프랑스에 도착했습니다. 1817년에는 가족을 데리고 파리로 이주했습니다. 당시 18세였던 소피는 모스크바 대화재 당시 현장에 있었던 나폴레옹의 부관 외젠 드 세귀르(Eugène de Ségur)를 만났고, 두 사람은 1819년 7월 14일 사랑으로 결혼했습니다.

손주들을 위해 쓴 이야기

결혼 다음 해 소피의 부모는 러시아로 돌아갔습니다. 1822년 아버지는 하노르망디에 있는 누에트 성(Château des Nouettes)을 딸에게 물려주었고, 소피는 파리를 떠나 그곳에 정착하기로 합니다. 변덕스럽고 불성실한 남편 외젠은 성을 자주 찾지 않았고, 소피는 여덟 명의 자녀 양육에 헌신했습니다. 그녀가 늦은 나이에 문단에 발을 들인 것은 바로 손주들 덕분이었습니다.

세귀르 백작부인은 손주들에게 들려주던 이야기를 글로 옮기면서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출판업자 루이 아셰트(Louis Hachette)는 아동용 도서 시리즈를 기획하며 작가를 물색하고 있었습니다. 외젠이나 기자 루이 뷔요(Louis Veuillot)를 통해 백작부인의 필력을 알게 된 그는 그녀와 직접 만나 1855년 10월 첫 출판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소피의 첫 작품 『새로운 동화(Nouveaux Contes de fées)』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는 그녀가 계속 집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매우 다작하는 작가가 되어 1858년에는 『모범 소녀들(Petites Filles Modèles)』, 1864년에는 『소피의 불행(Malheurs de Sophie)』 등을 잇달아 출간했습니다. 1860년부터는 로즈 문고(Bibliothèque Rose) 시리즈를 통해 그녀의 모든 작품이 출간되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비추는 이야기

세귀르 백작부인의 소설들은 양호한 가정의 아이들의 일상을 다루며, 많은 요소가 그녀 자신의 경험을 반영합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체벌 묘사나, 그녀의 이름을 딴 장난꾸러기이고 활발한 '소피'라는 인물이 대표적입니다. 또한 주변 사람들, 특히 손주들에게서 많은 캐릭터의 영감을 얻었습니다. 두 명의 '모범 소녀'는 손녀들의 이름을 따온 것이며, 장남의 실명은 『착한 꼬마 악마(Un bon petit diable)』에 등장하는 줄리에트 캐릭터의 모티프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소설은 선과 악, 옳고 그름을 뚜렷하게 대비하는 이원론적 구조를 지니며, 용기·관용·다정함 같은 미덕을 강조하는 강한 교훈적 성격을 띱니다. 작품들은 교육과 가정환경이 한 사람의 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라고 제시합니다. 버릇없거나 말썽꾸러기인 아이들이 사실은 학대받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올바른 환경 속에서 충분히 변화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녀의 소설은 이후 교육학 분야에도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1866년 소피 로스톱친은 평신도 수도 단체인 프란치스코회 제3회에 '마리프랑수아즈 수녀'라는 이름으로 가입하고 집필을 계속했습니다. 1869년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겪은 재정적 어려움 때문에 1872년 성을 팔 수밖에 없었고, 그녀는 파리로 이주하여 1874년 2월 9일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