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 1874~1946)은 인생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낸 미국의 작가이자 페미니스트로, 현대 미술과 문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입니다.
관습에 굴복하지 않은 삶
거트루드 스타인은 1874년 2월 3일 미국 피츠버그 교외에서 태어났습니다. 독일 출신 유대인 부유한 가정의 다섯째로, 아멜리아와 다니엘 스타인 부부의 딸입니다. 어린 시절 스타인 가족은 자녀들에게 유럽 문화를 접하게 하기 위해 빈과 파리를 여행했고, 이후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 정착했습니다.
어머니 아멜리아는 거트루드가 14세였을 때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 다니엘은 3년 뒤 사망했습니다. 장남 마이클이 가업을 물려받았고, 거트루드와 여동생 버사는 볼티모어의 친척 집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거트루드는 래드클리프 칼리지와 하버드에서 공부하며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를 만나 그의 멘토링을 받았습니다. 그의 권유로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끝내 학위를 마치지 못했습니다. 남성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환경 속의 이 시기는 그녀에게 고단한 나날이었으며, 그녀는 여성에 대한 전통적 이미지에 순응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술가이자 수집가

1903년 오빠 레오 스타인이 파리로 이주했고, 거트루드도 1년 뒤 그를 따라갔습니다. 두 사람 모두 예술 분야에서 일하고자 하는 열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수집가로서 두 사람의 취향은 뚜렷이 달랐습니다. 레오가 전통적인 경향을 선호했다면, 거트루드는 큐비즘과 피카소를 비롯한 현대 미술의 확산에 힘을 보탰습니다. 15년에 걸쳐 약 600점의 회화가 부유한 스타인 컬렉션을 거쳐갔고, 파리의 그들의 아파트는 아방가르드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1907년 거트루드는 레오의 비서 앨리스 B. 토클라스(Alice B. Toklas)를 만나 생애의 끝까지 함께했습니다. 이 관계는 예술적 견해 차이 등 다른 갈등 요소들과 더불어 오빠와의 사이를 더욱 멀어지게 만들었습니다.
1906년부터 1908년 사이 거트루드 스타인은 대표작 중 하나인 『미국인의 형성(The Making of Americans)』을 집필했지만 오빠는 이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고, 1914년 두 사람은 함께 살던 아파트를 정리하며 서로 연을 끊었습니다. 전쟁이 발발하자 거트루드와 앨리스는 부상자 수송과 물자 지원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거트루드는 집필과 수집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1933년에는 『앨리스 B. 토클라스의 자서전』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 책은 스타인 컬렉션의 이야기를 담으면서도 오빠의 역할은 배제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두 사람은 파리를 떠나 비시 국립도서관장이자 친구였던 베르나르 파이(Bernard Faÿ)의 보호 아래 몸을 피했습니다. 그의 제안으로 페탱의 연설 여러 편을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으나, 1941년 번역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거트루드 스타인은 1946년 7월 27일 뇌이쉬르센에서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수많은 저작과 시, 미술 평론을 후세에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