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레트 나달(1896-1985)은 마르티니크 출신의 문인으로, 흑인 정체성을 선언한 문학 사조 '네그리튀드(Négritude)'의 탄생에 영감을 준 인물입니다. 동시에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공부한 최초의 흑인 여성이기도 합니다.
할렘 르네상스
폴레트 나달은 엔지니어 폴 나달과 루이즈 아킬 사이에서 태어난 일곱 딸 중 장녀입니다. 1896년 마르티니크의 프랑수아 마을에서 태어난 그녀는 1902년 몽펠레 화산이 격렬하게 분출해 섬 최대 도시 생피에르를 순식간에 파괴했을 때 여섯 살이었습니다. 바칼로레아에 해당하는 과정을 마친 후 교사로 일하다가, 1920년 프랑스로 건너가 소르본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하기로 결심합니다. 이로써 그녀는 소르본에서 공부한 최초의 흑인 여성이 되었습니다.
파리에서 폴레트는 연극, 콘서트, 전시회 등 풍성한 문화생활을 즐겼습니다. 학위를 취득한 뒤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함께 살던 자매 안드레와 잔과 함께 문학 살롱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뉴욕에서 탄생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문화 부흥 운동인 '할렘 르네상스'와 깊은 연을 맺었습니다. 수많은 작가들이 드나든 나달 자매의 살롱은 흑인 디아스포라를 연결하고 흑인 문화를 옹호하는 구심점이 되었으며, 훗날 네그리튀드 사조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레오폴 상고르와 에메 세제르가 이곳에서 만났다는 사실은 특히 유명합니다.
네그리튀드 사조
폴레트 나달은 자매 안드레, 아이티 작가 레오 사주와 함께 프랑스어와 영어로 발행되는 『흑인 세계 평론(La Revue du Monde Noir)』을 창간했습니다. 이 잡지는 전 세계 흑인들에게 자신들의 문제를 논의하고 고유의 문화를 주장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했습니다. 재정난으로 단 6호만 발행되고 말았지만, 이후 같은 주제를 다룬 잡지들이 잇달아 등장했습니다. 세제르와 상고르가 네그리튀드 사조로 바통을 이어받았고, 폴레트는 이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세제르와 상고르는 우리가 내걸었던 아이디어를 물려받아 훨씬 더 눈부시게 펼쳐냈죠. 우리가 여성이었다는 것만 빼면요! 우리는 남성들을 위한 길을 열어두었습니다."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깊은 연민을 가졌던 폴레트는 1937년 친구 상고르의 초청으로 세네갈을 방문했고, 1938년에는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략에 반대하는 정치 활동에 나섰습니다. 이듬해 마르티니크로 돌아오던 배가 독일 잠수함의 공격으로 침몰하는 비극을 겪습니다. 폴레트는 구명보트로 뛰어내려 목숨을 건졌지만, 추락하면서 양쪽 무릎뼈가 골절되어 평생 신체의 고통을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영국 병원에서 치료를 마치자마자 마르티니크로 돌아간 그녀는, 런던의 샤를 드골 진영에 합류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몰래 영어 수업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검은 것은 아름답다!"
1944년 폴레트 나달은 뉴욕 유엔에서 잠시 근무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마르티니크로 돌아가 정착해야 했습니다. 1945년에는 프랑스 여성들에게 막 부여된 참정권을 마르티니크 여성들이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독려하기 위해 '여성 집단(Rassemblement Féminin)'을 조직했습니다. 1948년에는 동포들의 정치 의식을 계몽한다는 같은 목표로 잡지 『도시 속의 여성(La femme dans la cité)』을 창간했습니다. 헌신적인 활동가였던 그녀는 보육 시설 건설과 미혼모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위해 싸우는 한편, 자신이 소중히 여기던 흑인 문화 옹호 운동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음악에 대한 열정도 남다라 자매 앨리스와 함께 마르티니크 시골 음악 전통사를 저술했고, 합창단을 직접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학생들, 친구들, 지인들에게 그녀는 늘 한마디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검은 것은 아름답다!"
폴레트 나달은 1985년 2월 16일, 8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