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시몬느 시뇨레(Simone Signoret): 오스카를 품은 프랑스의 전설적 배우이자 작가

시몬느 시뇨레는 누구인가?

시몬느 카맹케르(Simone Kaminker), 예명 시몬느 시뇨레(Simone Signoret, 1921~1985)는 프랑스의 배우이자 작가입니다. 영화 라 비 앙 뒤 쏘아(La Vie avant soi)에서의 열연으로 세자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프랑스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오스카)을 받은 인물이기도 합니다.

첫 배역과 데뷔 과정

폴란드 출신 언론인 앙드레 카맹케르(André Kaminker)와 어머니 조르제트 시뇨레(Georgette Signoret) 사이에서 태어난 시몬느 카맹케르는 1921년 3월 25일 독일 비스바덴에서 세 자녀 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가족과 함께 브르타뉴로 피난했던 그녀는 반(Vannes)에서 학업을 이어갔으며, 당시 저항 운동가이자 교사였던 루시 오브락(Lucie Aubrac)에게 가르침을 받기도 했습니다.

1941년 파리로 돌아온 그녀는 친독 협력파 언론인 장 뤼셰르(Jean Luchaire)의 비서로 일했습니다. 뤼셰르의 딸이자 배우였던 코린 뤼셰르(Corinne Luchaire)의 도움으로 영화 단역의 길에 들어섰고, 바로 이 시기부터 무대명으로 어머니의 성인 '시뇨레'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단역 역할을 거친 후 1943년, 그녀는 감독 이브 알레그레(Yves Allégret)를 만나 1946년 딸 카트린을 낳았고, 1948년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1946년에는 마르셀 블리스텐(Marcel Blistène) 감독의 영화 마카담(Macadam)에서 첫 의미 있는 배역을 맡았고, 그 해석력은 다음 해 가장 유망한 신인 여배우에게 주어지는 쉬잔 비앙셰티 상(Suzanne-Bianchetti Prize)으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1948년 앙베르의 데데(Dédée d'Anvers)에서 창부 역, 1950년 마네슈(Manèges)에서 조종간 같은 아내 역 등 이브가 준 두 개의 주연 배역을 성공적으로 소화했습니다. 그러나 1949년 그녀는 남편을 떠나 젊은 샹송 가수 이브 몽탕(Yves Montand)을 만났고, 두 사람은 1951년 결혼했습니다.

오스카 여우주연상 수상

이후 시몬느 시뇨레는 여러 주연 배역을 거듭하며 스타 반열에 올랐습니다. 1951년 황금 투구(Casque d'or)의 창부 역, 1954년 악마 같은 여자들(Les Diaboliques)의 교사 역이 대표적입니다. 그녀와 남편 이브 몽탕의 집에는 장 폴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세르주 레지아니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었습니다. 프랑스 공산당과 가까웠던 부부는 동유럽권 순회 공연을 다녀왔지만, 환멸을 느끼고 돌아온 뒤 당과 거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1959년 부부는 미국으로 이주했고, 이듬해인 1960년 시몬느는 영화 상층부의 길(Les Chemins de la haute ville)에서의 연기로 프랑스 여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이후 프랑스로 돌아온 그녀는 정치성이 짙은 작품들을 포함해 수많은 영화에 출연했으며, 코스타 가브라스, 장피에르 멜빌, 장 가방, 알랭 들롱, 파트리스 셰로 등 걸출한 감독·배우들과 호흡을 맞췄습니다. 1978년에는 아우슈비츠 생존자이자 몰래 하숙집을 운영하던 전직 창부 '마담 로자' 역을 라 비 앙 뒤 쏘아에서 그려내며 세자르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습니다.

말년과 죽음

1981년부터 시몬느는 술과 담배로 인한 심각한 건강 문제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담낭 수술을 받은 뒤 서서히 실명에 이르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췌장암 투병 끝에 시몬느 시뇨레는 1985년 9월 30일 오트유오투이예(Autheuil-Authouillet)에 있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파리 페르 라셰즈 묘지에 잠들었으며, 6년 뒤 남편 이브 몽탕이 그곳에서 그녀 곁에 묻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