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공산주의 저항 운동가 다니엘 카사노바, 아우슈비츠까지의 여정

빈센텔라 페리니(Vincentella Perini), 즉 다니엘 카사노바(Danielle Casanova, 1909~1943)는 공산주의 활동가이자 프랑스 레지스탕스 운동가였습니다. 프랑스 공산청년단의 지도자이자 프랑스 젊은 여성 연합(UJFF)의 창립자인 그녀는 아우슈비츠로 강제 이송되는 과정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프랑스 젊은 여성 연합의 탄생

교사의 딸로 태어난 빈센텔라는 1909년 1월 9일 코르시카의 아작시오에서 다섯 자녀 중 한 명으로 태어났습니다. 코르시카에서 학업을 시작해 바르 지역에서 공부를 이어갔고, 이후 파리 치과대학에 입학했습니다. 1927년 수도 파리로 이주한 그녀는 공산주의 성향의 학생 단체인 학생 연방 연합에 가입하여 곧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성장합니다. 바로 그곳에서 법학도이자 조직의 또 다른 책임자였던 로랑 카사노바(Laurent Casanova)를 만나게 됩니다. 1928년 빈센텔라는 공산청년단에 가입했고, 로랑 역시 함께 가입시켰습니다. 의과대학 그룹의 서기가 되면서부터 그녀는 스스로를 '다니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33년 12월 12일, 로랑 카사노바와 결혼하면서 빈센텔라 페리니는 다니엘 카사노바가 되었습니다.

학업을 마친 후 다니엘은 파리의 작은 치과 진료소에서 일했습니다. 1934년 2월, 그녀는 공산청년단 지도부에 포함된 유일한 여성이 되었습니다. 1935년에는 모스크바에서 열린 공산주의 청년 인터내셔널 대회에 참석했습니다. 이듬해 조직이 급격히 확장되자, 다니엘은 제8차 대회로부터 평화주의 및 반파시즘 운동 단체인 프랑스 젊은 여성 연합(UJFF)을 창설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그녀는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같은 해 12월 UJFF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었고, 이후 스페인 공화파를 지원하는 각종 활동을 조직했습니다.

체포와 강제 이송

1939년 9월 프랑스 공산당(PCF)이 불법화되자, 많은 활동가들과 마찬가지로 다니엘 카사노바는 지하로 숨어들었습니다. 그녀는 활동가들 간의 연결망을 다시 구축하는 데 힘썼고, 군 내부에서의 정치 선전 활동에도 참여했습니다. 1940년 가을부터는 점령 지역에서 여성 위원회 설립을 주도했으며, 공산주의 청년단의 무장 투쟁 참여를 이끌었습니다. 그러던 1942년 2월 15일, 게슈타포에게 쫓기던 레지스탕스 활동가 조르주 폴리처에게 물자를 전달하던 중 프랑스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다니엘은 라 상테 감옥에 수감된 뒤 로맹빌 요새로 이감되었습니다. 그러나 수감 중에도 그녀는 활동을 멈추지 않고 비밀 시위와 지하 출판물을 조직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943년 1월 24일, 다니엘은 강제 이송되었고, 대부분이 여성 레지스탕스 대원들로 구성된 열차는 3일 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했습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치과 의사로 일하며 동료 수용자들을 돌보았습니다.

다니엘 카사노바는 1943년 5월 9일 아우슈비츠에서 발진티푸스로 사망했습니다. 해방 이후 프랑스 곳곳의 많은 중·고등학교, 학교, 거리들이 그녀의 이름을 기리며 명명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