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할렘의 '여왕' 스테파니 세인트 클레어, 미국 마피아에 굴복하지 않은 갱단 리더

갱단 리더 스테파니 세인트 클레어(1887~1969)는 뉴욕 할렘에서 범죄 조직을 운영하며 미국 마피아의 간섭 없이 독립적인 세력을 유지한 인물입니다. 그녀는 '퀸니(Queenie)', 혹은 '마담 생클레르(Madame Saint-Clair)'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주의: 이 글에는 강간, 폭력, 인종 차별 범죄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뉴욕으로 가다

스테파니 세인트 클레어는 1887년 12월, 마르티니크의 포드프랑스(Fort-de-France) 또는 과들루프의 르물(Le Moule)에서 태어난 것으로 훗날 자신이 밝혔습니다. 젊은 시절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출생 연도조차 몇 년의 오차가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프랑스령 서인도 제도에서 성장한 그녀는 어느 날 새로운 삶을 찾아 먼 곳으로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프랑스어를 구사하던 그녀는 처음 프랑스에 정착했고, 일부 기록에 따르면 캐나다에서도 몇 년간 일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여성이면서 흑인이고 혼자였던 그녀에게 만족스러운 자리를 얻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녀는 1911년 마르세유에서 배 '기아나호(The Guiana)'에 올라, 항해 내내 영어를 익히며 준비한 끝에 7월 뉴욕에 도착합니다.

할렘에서 스테파니는 '듀크'라는 이름의 건달을 만나 연인 관계를 맺습니다. 그러나 듀크가 그녀를 매춘부로 내몰려 하자, 그녀는 그의 눈에서 피가 흐를 정도로 때려 병원에 실어 보낸 뒤 버스를 타고 미네소타로 떠납니다. 그런데 다음 날 밤, 버스가 쿠 클럭스 클랜(KKK)에게 저지당합니다. 여러 흑인 승객들이 잔혹하게 살해되었고, 스테파니 역시 반복적인 성폭행을 겪습니다. 뉴욕으로 돌아온 그녀는 듀크가 갱단 간 총격전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넘버스 라켓'의 여왕

정당한 직업을 구하려 애썼지만, 스테파니 세인트 클레어는 결국 도박 사업, 특히 당시 큰 인기를 끌던 지하 복권 '넘버스 라켓(numbers racket)'에 뛰어들게 됩니다. 당시 미국은 인종 차별이 만연하여 많은 은행이 흑인 고객의 예금과 투자를 거부했습니다. 합법적으로 자산을 불릴 길이 막힌 사람들은 스테파니처럼 도박과 할렘의 지하 경제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넘버스 라켓에 손을 대는 극소수 여성 중 한 명이었던 그녀는 빠르게 이름을 알렸고, 상당한 수입을 올립니다. 변호사, 경호원, 은행원, 판돈 수금원을 고용했고, 자신에게 적대하는 이들에게는 강경책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오른팔은 믿음직한 부하 엘스워스 '범피' 존슨(Ellsworth "Bumpy" Johnson)이었습니다. 백인 마피아는 그녀를 '퀸니'라 불렀고, 할렘 주민들은 '마담 생클레르'라는 호칭을 더 좋아했습니다.

할렘 공동체와 함께

스테파니 세인트 클레어는 에지컴 애비뉴(Edgecombe Avenue)에 아파트를 마련하고, 범아프리카주의 운동가 W.E.B. 듀보이스, 반인종차별 시인 카운티 컬런 등 할렘 르네상스를 이끌던 인사들과 폭넓게 교류했습니다. 활동의 불법성과 때때로 동반되는 폭력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할렘 흑인 공동체 안에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냈습니다. 외국 출신이라는 배경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생전에 할렘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일자리 창출과 기부를 넘어, 스테파니는 나름의 방식으로 할렘 흑인 공동체의 권리를 옹호했습니다. 지역 신문에 광고를 싣어 선거권 행사 방법을 알리고 경찰 폭력을 고발했습니다. 당국이 무반응으로 일관하자, 그녀는 할렘 신문에 경찰관들의 부패를 직접 지목하는 글을 게재합니다. 근거는 확실했습니다. 그녀는 수첩에 받아낸 뇌물의 액수와 넘버스 라켓에 가담한 경찰관들의 이름을 꼼꼼히 기록해 두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열두 명의 경찰관이 직위에서 물러났지만, 정작 스테파니는 경찰관과 판사 매수 혐의로 8개월간 수형 생활을 보냅니다.

미국 마피아와의 충돌

1933년 미국의 금주법 폐지는 미국 마피아의 수익에 큰 타격을 입혔고, 마피아는 할렘의 불법 도박 시장에 눈을 돌립니다. 특히 갱단 보스 더치 슐츠(Dutch Schultz)는 위협과 구타, 나아가 살인까지 서슴지 않으며 넘버스 라켓 운영자들에게 보호비를 강요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굴복했지만, 스테파니는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그녀는 죽음의 위협과 폭력에 대해 더치 슐츠의 협력자들 가게 창문을 깨부수는 것으로 화답했고, 나아가 그를 경찰에 팔아넘깁니다. 그녀는 언론에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 충돌 이후 스테파니는 경찰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사업에서 물러나, 사업을 '범피' 존슨에게 맡깁니다. 이탈리아계 미국인 갱스터 럭키 루치아노(Lucky Luciano)가 할렘 불법 도박 시장에 공세적으로 진입하자, 범피는 결국 휴전을 협상하고 일종의 세금을 지불하기로 합니다.

1935년, 더치 슐츠는 미국 마피아 5대 패밀리의 명령으로 암살당합니다. 스테파니는 이 살인에 연루되지 않았지만, 임종을 앞둔 그에게 짧고 통렬한 전문을 보내 작은 복수를 만끽합니다. "As ye sow, so shall ye reap(자신이 뿌린 대로 거두리라)."

말년

사업에서 은퇴한 스테파니 세인트 클레어는 수피 활동가 압둘 하미드(Abdul Hamid)를 만나 결혼합니다. 그는 노골적인 반유대주의 발언으로 '흑인 히틀러'라는 별명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결혼은 순식간에 파탄에 이르는데, 아마도 남편의 불륜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1938년, 그는 변호사를 만나러 가던 중 총에 맞아 사망합니다. 스테파니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정말 죽이고 싶었다면 그는 이미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결국 유죄 판결을 받고 수년간 감옥에 갇힙니다.

석방 후에도 스테파니는 신문에 글을 계속 발표하며 흑인 공동체가 겪는 차별, 경찰 폭력과 권력 남용을 끊임없이 고발했습니다. 그녀는 1969년, '범피' 존슨이 세상을 떠난 지 1년 뒤 자신의 삶을 마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