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 2세, 흔히 '독일인 루트비히'로 알려진 그는 카롤링거 제국의 창시자 샤를마뉴의 손자이자 경건왕 루트비히의 차남이다. 방대한 제국을 물려받은 경건왕 루트비히는 제국을 세 아들인 로타르, 루트비히, 피핀에게 나누어 물려주려 했다.
817년 그는 Ordinatio Imperii(제국 칙령)이라는 법령을 반포하여 장남 로타르를 공동 황제로 임명하며 특별히 우대했는데, 이 결정이 왕위 계승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여기에 재혼한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대머리 카를까지 등장하면서 형제 간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경건왕 루트비히가 막내 카를에게 더 넓은 영토를 몰아주자 그는 다시 한번 폐위되었고(833년), 장남 로타르가 황제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로타르의 막강한 권력에 위협을 느낀 루트비히와 피핀은 834년 아버지를 다시 황좌에 복위시켰다. 838년 피핀이 요절하면서 제국은 새로운 분할 국면(839년 보름스 조약)을 맞이하게 되었다.
자신이 소외당했다고 판단한 루트비히는 아버지를 공격할 준비를 하던 중 840년 경건왕 루트비히가 사망한다. 이후 그는 권력 장악을 노리는 로타르에 맞서 대머리 카를과 손잡고 싸워 푸아세의 퐁트누아 전투(841년)에서 승리했으며, 842년 스트라스부르 서약을 통해 두 사람의 동맹은 더욱 공고해졌다.
베르덩 조약과 동프랑크 왕국의 성립
843년 체결된 베르덩 조약에 따라 제국은 로타르, 루트비히, 카를 세 형제에게 균등하게 분할되었다. 동부 영토를 차지한 루트비히는 게르마니아, 즉 동프랑크 왕국의 왕으로 즉위했다. 이후 서로 대립하던 카를과 루트비히는 855년 사망한 로타르의 영토인 로타링기아를 분할 점령했다(870년 메르센 조약).
권력을 둘러싼 다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루트비히와 카를은 다시 충돌했고, 결국 카를이 황제로 즉위했다(875년). 한편 동방에서는 루트비히가 슬라브족과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며 왕국의 방위에 힘썼다. 격동의 시기를 보냈음에도 그는 예술과 문화 육성에도 관심을 기울여 왕국의 기반을 다졌다.
생애 개요
활동 시기: 약 806년 ~ 876년
신분: 동프랑크 왕국의 국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