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야드비가 자간스카(–1390): 카지미에시 대왕의 네 번째 아내

야드비가 자간스카(–1390): 카지미에시 대왕의 네 번째 아내

야드비가 자간스카(Jadwiga Żagańska)의 초상화는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얀 마테이코가 그린 당대 여성 복식 스케치를 통해 그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을 뿐입니다.

15세의 신부, 이중의 중혼

야드비가는 실롱스크 피아스트 가문 중 가장 강력한 인물 중 하나인 자간 공작 헨리크 5세 '철공(Żelazny)'과 마조프셰 공주 안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었습니다. 그녀는 열다섯 살 무렵 카지미에시 대왕(Kazimierz Wielki)과 결혼했습니다. 혼례는 1365년 2월 25일 프스호바(Wschowa)에서 거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결혼은 왕에게 있어 사실상 이중의 중혼이었습니다. 전처였던 헤센 변경백부인 아델라이데와 평민 출신의 크리스티나 로키차나가 당시에도 모두 생존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야드비가의 바벨 성 입성은 어떠한 화려한 의식도 없이 조용히 이루어졌습니다.

노왕 곁에서 보낸 나날

야드비가와 늙어가던 국왕의 부부 생활은 원만했습니다. 카지미에시는 젊은 아내를 깊이 아꼈으며, 비교적 새로 지어진 주르노비에츠(Żarnowiec) 성에서 함께 지내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성은 예전에 폴란드를 떠나 헤센으로 갔던 정식 왕비 아델라이데가 머물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국왕은 마지막 아내 사이에서 세 딸을 두었습니다. 안나, 유년 시절에 요절한 쿠네군다, 그리고 야드비가입니다. 그러나 카지미에시가 간절히 바라던 아들, 즉 왕위 계승자는 끝내 얻지 못했습니다. 문서에는 야드비가 자간스카를 '폴로니아의 여왕(regina Poloniae)'이라 칭하는 표현이 등장하지만, 이것이 실제 상황을 반영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경어 표현에 불과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차피 먼저 대관식을 치렀던 아델라이데가 아직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죽음 이후의 삶

1370년 카지미에시 대왕이 서거하자, 야드비가는 장례식과 함께 새 국왕인 헝가리의 러요시(Ludwik)의 대관식에 참석했습니다. 연대기 작가 얀코 차른코프스키(Janko z Czarnkowa)에 따르면, 미망인은 선왕의 유언에 따라 풍성한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합니다.

러요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카지미에시의 아내와 딸들을 폴란드 밖으로 내보냈는데, 이들이 자신의 지위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후 교황 그레고리오 11세는 안나와 야드비가를 적출(嫡出)로 인정했고, 황제는 두 사람의 혼사를 알선해 주었습니다.

1372년 2월, 야드비가 자간스카는 레그니차 공작 루프레히트 1세와 재혼하여 슬하에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1390년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