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애들레이드 헤스카(1324~1371): 폴란드 대왕 카지미에시 3세의 두 번째 왕비

애들레이드 헤스카(1324~1371): 폴란드 대왕 카지미에시 3세의 두 번째 왕비

얀 마테이코가 그린 애들레이드 헤스카 초상화 (사진: 퍼블릭 도메인)

헤센 방백의 딸로 태어나다

애들레이드 헤스카(1324~1371)는 폴란드 대왕 카지미에시 3세의 두 번째 아내였습니다. 그녀는 헤센 방백 하인리히 2세 '철인'과 베틴 가문 출신 엘리자베트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었습니다.

당시 헤센은 단 두 개 지역으로만 이루어진 작은 영지였고, 가문 내 여러 분가들 사이에서 분할되어 있었습니다. 애들레이드는 브라반트 공작에게서 비롯된 유서 깊은 가문의 후손이었지만, 그 가문은 이미 크게 몰락한 상태였습니다. 체코의 군주 룩셈부르크의 요한의 조언에 따라 카지미에시가 현지 방백의 딸과 혼인하기로 결정했을 때, 신부 쪽에서 마련할 수 있는 지참금은 매우 적었으며, 연대기 작가 드우고슈는 이를 '가난하다'고 평했고 실제로 지급되지도 않았습니다.

포즈난에서의 대관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들레이드는 폴란드에서 성대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폴란드 국왕과의 결혼식과 대관식은 1341년 9월 29일 포즈난에서 거행되었습니다. 카지미에시는 아내에게 풍성한 생활을 제공했고, 왕비는 별도의 궁정을 갖추고 바벨 성 또는 자신의 영지인 산도미에시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결혼은 행복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국왕은 미모의 여성에게 약하기로 유명했던 반면, 애들레이드는 외모보다는 덕성으로 빛나는 인물이었습니다. 게다가 국왕은 그녀 사이에서 바라던 후계자를 얻지 못했습니다. 결국 카지미에시는 아내와의 이혼을 결심하고, 감금 생활이 이혼 동의를 설득할 것이라 기대하며 그녀를 자르노비에츠 성에 유폐했습니다. 1356년 국왕이 크리스티나 로키차니라는 여인과 중혼을 감행하자, 애들레이드는 폴란드를 떠났습니다. 다만 그것이 스스로의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남편에 의해 쫓겨난 것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습니다.

교황에 호소한 마지막 항쟁

고향으로 돌아온 애들레이드는 폴란드 국왕에 맞서 강력한 대응에 나섰습니다. 그녀는 교황을 끌어들여 자신이 불법적으로 쫓겨나 수입마저 빼앗겼다고 호소했고, 사건에 대한 조사와 정당한 배우자로서의 권리 회복을 요구했습니다. 교황 우르바노 5세는 그녀의 청원을 받아들여 특사를 폴란드에 파견해 왕비 출국의 경위를 조사하게 했습니다.

재판은 오랫동안 진행되었는데, 카지미에시 역시 애들레이드와의 혼인 무효를 선언받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최종적으로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애들레이드는 말년까지 헤센에서 지내다가 1371년 세상을 떠났으며, 이는 국왕이 서거한 1370년으로부터 정확히 1년 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