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담 미츠키에비츠(사진: 퍼블릭 도메인)
아담 미츠키에비츠(Adam Mickiewicz, 1798~1855)
아담 미츠키에비츠는 폴란드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정치 운동가로, 오늘날까지 '국민 시인'으로 추앙받는 인물입니다. 그는 1798년 12월 24일 자오시(Zaosie) 또는 노보그루데크(Nowogródek)에서 하급 귀족 출신 법원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청년기의 좌절과 사랑
미츠키에비츠의 청년기를 형성한 결정적 경험 중 하나는 나폴레옹 군대가 모스크바로 진군하는 광경을 직접 목격한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폴란드의 속박이 끝날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해준 개선 행진이었지만, 얼마 후 러시아군에게 패배해 돌아오는 잔존 병력들의 처참한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1815년 빌뉴스로 유학을 떠난 그는 애국 활동에 적극 가담하여 필로마트 협회(Society of Philomats) 창설에 기여했습니다. 1820년대 말에는 평생의 사랑이었던 마릴라 베레슈차코브나(Maryla Wereszczakówna)를 만났지만, 미츠키에비츠의 열악한 재정 형편 때문에 마릴라의 부모는 딸을 더 유복한 다른 남성과 강제로 결혼시켰습니다. 한편 그는 애국 활동을 이유로 러시아 내지로 추방되었고, 1829년부터 유럽 각지를 방랑하기 시작했습니다.
파리 정착과 '대이동'의 중심 인물
1831년, 조국에서 봉기가 격렬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을 시도했으나 결국 국경을 넘지 못하고 드레스덴에 머물렀습니다. 이후 파리로 옮겨 그곳에 영구 정착했으며, 셀리나 시마노프스카(Celina Szymanowska)와 결혼하여 여섯 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프랑스 수도에서 그는 학문의 길에 들어서 슬라브어 등을 강의했는데, 작가 조르주 상드도 이 강연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기 미츠키에비츠는 이른바 '대이동(Great Emigration)', 즉 망명 폴란드인 공동체의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마지막 투쟁과 죽음
1848년 민족의 봄(Spring of Nations) 시기에는 로마에서 롬바르디아의 독립 투쟁을 지원하는 폴란드 군단을 조직했습니다. 시인의 마지막 애국 활동은 프랑스가 크림 전쟁에 참전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콘스탄티노플로 향해 러시아에 맞서 싸울 폴란드인 부대와 유대인 부대(폴란드 군단, 유대인 군단) 편성에 착수했습니다. 그러나 1855년 콜레라가 창궐하던 와중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유해는 먼저 프랑스로 옮겨져 몽모랑시(Montmorency)에 있는 최대 규모의 폴란드인 묘지에 안장되었으나, 1890년 조국 폴란드로 이장되어 크라쿠프의 바벨(Wawel)에 안치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