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트린 도미니크 드 페리뇽(Catherine-Dominique de Pérignon, 1754~1818)은 프랑스 혁명 전쟁과 나폴레옹 시대를 모두 관통하며 군인이자 정치가로 활약한 인물이다. 한때 정계에 발을 들였다가 국가의 위기 앞에서 다시 검을 잡았고, 피레네 전선에서 화려한 승전을 쌓아 올린 뒤 나폴레옹의 깊은 신임 속에 제국 최고의 명예를 누렸다.
입법의회 의원에서 군인으로
페리뇽은 1791년 입법의회 의원으로 선출되며 정치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럽 열강이 연합하여 혁명 프랑스를 고립시키고 침공하려 하자, 그는 의석보다 전장을 택했다. 동맹군의 침입을 막겠다는 목표 아래 군 경력을 재개한 그는, 남부 전선에서 자신의 군사적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된다.
피레네 전선의 대승, 뒤고미에의 후계자
페리뇽이 진가를 드러낸 곳은 스페인과 맞닿은 피레네 산맥 전선이었다. 특히 1794년 몽타뉴누아르(검은산, Montagne-Noire)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며 명성을 얻었다. 이 전역에서 지휘관 자크 프랑수아 뒤고미에(Dugommier)가 전사하자, 페리뇽이 그 자리를 이어받아 동(東)피레네 방면군의 지휘권을 넘겨받았다. 이후에도 연이은 승리를 거듭하며 적의 침공을 성공적으로 저지했고, 피레네 전역을 마무리 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오백인회 의원, 그리고 나폴레옹의 은총
전쟁이 끝난 뒤 페리뇽은 오백인회(Council of Five Hundred) 의원으로 선출되며 다시 정치 무대로 돌아왔다. 권력을 장악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그의 공헌을 기억하며 쏟아지는 듯한 영예를 안겼다. 페리뇽은 원로원(Sénat) 의원으로 임명되었고, 1804년에는 프랑스 제국 원수(Maréchal d'Empire)로 서임되는 영광을 누렸으며, 이어 제국 백작(comte d'Empire) 작위까지 받았다.
말년의 행적
제정 시기에는 스페인 주재 대사와 나폴리 총독 등 외교·행정 분야의 중책도 맡으며 나라에 기여했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작된 그의 긴 여정은 1818년 12월, 평화로운 은거 생활 가운데 조용히 막을 내렸다. 전장에서의 승리와 정계에서의 신임을 모두 누린 페리뇽은, 혁명과 제정이라는 격변의 시대를 살아낸 대표적인 군인 정치가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