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앙리 4세의 오른팔, 설리 공작 막시밀리앵 드 베튼

앙리 4세와 가장 가까웠던 인물 중 하나였던 설리 공작 막시밀리앵 드 베튼(Maximilien de Béthune)은 왕의 각료가 되기 전, 먼저 전우로서 함께 전장을 누볐던 동반자였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는 자신의 칼뱅주의 신앙을 끝내 저버리지 않으면서도, 내전으로 피폐해진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 앙리 4세가 가톨릭으로 개종하도록 설득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프랑스 재건을 이끈 다재다능한 국무총리

프랑스의 부흥을 강하게 염원했던 설리는 국정 거의 전 분야를 총괄했습니다. 1598년 재정총감(Superintendent of Finances)으로 임명되어 국가 재정을 장악했으며, 외교 정책과 군사(포병 및 요새 총감), 행정은 물론 도시 계획(프랑스 대도로 감독관, grand voyer)과 농업 정책까지 폭넓게 관리했습니다.

특히 농업에 대해 그는 '갈이와 목축은 프랑스의 두 젖가슴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또한 '프랑스 농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올리비에 드 세르(Olivier de Serres)의 농학 연구를 적극 후원하며 프랑스 농업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영광과 몰락, 그리고 복권

1606년에는 귀족 작위를 받아 설리 공작(Duc de Sully)이 되었으나, 앙리 4세 암살 5년 뒤 섭정 마리 드 메디시스에 의해 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나 실각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명망은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1634년, 은거 중이던 그는 리슐리외에 의해 프랑스 원수(Marshal)로 서임되었습니다. 프랑스 팔작(peers of France)의 일원으로서 그는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나라의 안정을 지키며 조용히 조국을 지켜보았습니다.

생몰년: 1559년 12월 13일 ~ 1641년 12월 22일

앙리 4세의 오른팔, 설리 공작 막시밀리앵 드 베튼

주요 신분 및 직책

  • 정치가
  • 앙리 4세의 각료
  • 재정총감
  • 포병 및 요새 총감
  • 프랑스 대도로 감독관(grand voyer)
  • 프랑스 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