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의 실권자, 바라스 자작
폴 프랑수아 장 니콜라 드 바라스(Paul François Jean Nicolas de Barras)는 프로방스 출신의 하급 귀족으로, 프랑스 혁명 초기에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며 짧은 군 생활을 거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툴롱에서의 보나파르트 발탁
국민공회 의원이 된 그는 특사 대표로 파견되어 혁명 세력에 넘어간 툴롱 항구 탈환 작전을 지휘했는데, 바로 이때 젊은 포병 장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눈여겨보고 적극적으로 발탁했습니다. 이 만남은 훗날 프랑스 역사를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이후 그는 공안위원회에 의해 소환되었으나, 곧 로베스피에르 체제에 대한 반대파에 몸을 던지며 테르미도르파의 지도자로 부상했습니다.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한 뒤에는 파리 주둔군 총사령관을 맡았습니다.
왕정 복고 저지와 총재정부의 최고 실권자
바라스는 왕정의 부활을 결코 원치 않는 인물이었습니다. 1795년 방데미에르 13일(10월 5일)에 일어난 왕당파의 봉기를 진압하라고 다시 한번 보나파르트에게 명령했고, 보나파르트는 '포도탄'으로 이를 무력 진압하며 명성을 얻습니다.
총재정부 시기에는 다섯 명의 총재 중 수석 총재로서 정부의 구심점 역할을 했으며, 당대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가 중 한 사람으로 군림했습니다.
말년
나폴레옹이 제정을 선포하면서 권력에서 밀려났던 바라스는 제정이 붕괴한 후 프랑스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왕정 복고 이후 왕을 살해한 자들을 추방하는 명단에 그의 이름은 포함되지 않았고, 1829년 조용히 생을 마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