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보니 프린스 찰리에게는 형제자매가 있었을까요?

보니 프린스 찰리(Charles Edward Stuart, 1720~1788)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왕좌를 되찾기 위해 1745년 재커바이트 봉기를 일으킨 인물로, 오늘날까지도 로맨틱한 비운의 영웅으로 기억됩니다. 그렇다면 이런 전설적인 인물에게는 형제자매가 있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성인까지 살아남은 형제자매는 단 한 명, 남동생 헨리 베네딕트 스튜어트뿐이었습니다. 다만 찰리의 가족 관계는 오해하기 쉬워서, 관련 인물들을 함께 정리해 보겠습니다.

남동생 헨리 베네딕트 스튜어트

헨리 베네딕트 토머스 에드워드 마리아 클레멘트 프랜시스 자비에르 스튜어트(Henry Benedict Thomas Edward Maria Clement Francis Xavier Stuart)는 1725년 3월 6일 로마에서 태어난 찰리의 남동생입니다. 그는 가톨릭 사제의 길을 걸어 추기경에 서임되었으며, '요크 추기경(Cardinal York)'이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형 찰리가 군사적·정치적 야망을 좇으며 전장을 누비는 동안, 헨리는 평생을 교회에 헌신했습니다. 1788년 형이 세상을 떠나자 헨리는 스튜어트 가문의 수장이 되었고, 재커바이트들은 그를 '헨리 9세'라 부르며 명목상의 왕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자녀 없이 1807년 사망하면서 스튜어트 왕조의 직계 혈통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찰리의 부모

아버지 제임스 프랜시스 에드워드 스튜어트: '늙은 왕위 요구자(The Old Pretender)'로 불리는 인물로, 잉글랜드의 제임스 2세의 아들입니다. 1688년 명예혁명으로 아버지가 폐위된 뒤 태어나, 평생 왕위를 회복하지 못한 채 로마에서 망명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어머니 마리아 클레멘티나 소비에스카(Maria Clementina Sobieska): 1702년 7월 18일에 태어났으며,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국왕 얀 3세 소비에스키의 손녀입니다. 1719년 제임스 프랜시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와 결혼하여 찰리와 헨리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흔히 혼동되는 친척: 고모 루이자 마리아 테레사

루이자 마리아 테레사 스튜어트(Louisa Maria Teresa Stuart)는 1692년 6월 28일에 태어났지만, 찰리의 누나가 아니라 아버지 제임스 프랜시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의 여동생, 즉 찰리의 고모입니다. 그녀는 결혼하지 않은 채 1712년, 19세의 어린 나이에 천연두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리

보니 프린스 찰리에게는 성인으로 성장한 형제자매가 한 명 있었습니다. 바로 '요크 추기경'이라 불린 남동생 헨리 베네딕트 스튜어트입니다. 두 형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모두 스튜어트 왕조의 마지막 후예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