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7년, 아메다바드를 집어삼킨 기록적 폭우
1927년 인도 구자라트 지방에는 유례없는 참혹한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아메다바드 시의 연평균 강수량은 약 762mm(30인치)에 불과했지만, 그해 7월 23일부터 28일까지 단 며칠 만에 약 1,727mm(68인치)의 비가 내렸습니다.
그 결과 아메다바드 전역에 대홍수가 발생했고, 무려 5,093채의 가옥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더 많은 이들이 집을 잃고 거리로 내몰렸으며, 수천 명이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당시 발라브바이 파텔은 아메다바드 시의회 의장으로서 바로 이 위기의 한복판에 서 있었습니다.
밤낮 없이 이어진 헌신적인 구호 활동
파텔은 이 시련의 순간에 시민들을 위해 몸소 나섰습니다. 여러 곳에 물이 차오르면서 배수 문제가 최대 난관으로 떠올랐는데, 그는 흙으로 막혀 버린 배수로를 직접 뚫는 등 손발이 오그라들도록 일했습니다. 시의회의 모든 자원을 동원했지만, 시민들의 고통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이에 파텔은 봄바이(현 뭄바이)에 있던 형 비탈바이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형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구호 활동에 매진했습니다. 파텔은 또한 구자라트 전역의 주민들에게 아메다바드 이재민을 돕기 위한 기부를 호소했고, 그 결과 15만 루피가 모였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참화가 너무 컸기에 이는 마치 낙타의 입에 든 깨알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신속한 결정과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메다바드에 전염병이 번질 위기마저 감도는 상황이었습니다.
총독 어윈의 방문과 중앙 정부의 지원
이에 비탈바이는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해 총독의 아메다바드 방문을 요청했습니다. 비탈바이와 교류하던 봄바이의 지도자들 역시 총독에게 방문을 탄원했습니다.
그리하여 1927년 12월 9일, 총독 로드 어윈이 직접 아메다바드를 찾았습니다. 그는 홍수 피해 지역을 폭넓게 시찰하고 시의회와 파텔이 이룬 성과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파텔은 시민들이 처한 문제를 상세히 보고했으며, 스스로 집을 재건할 능력이 없는 이들을 위해 정부가 국비로 주택을 지어주라고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총독 어윈은 파텔의 모든 요구에 공감했고, 이번 재난에 대해 중앙 정부의 충분한 지원을 보내겠다고 약속한 뒤 귀환했습니다. 델리에 돌아온 그는 아메다바드의 무너진 가옥 재건을 위해 무려 1천만 루피(1크로어)를 보냈습니다. 파텔은 이 지원에 대해 관대한 마음으로 중앙 정부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빈민의 나와즈', '메시아'로 불리다
영국 식민 정부는 파텔을 '진정한 인류의 봉사자'라 칭하며 경의를 표했습니다. 구자라트 전역의 주민들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그를 '가난한 이들의 나와즈(후원자)'이자 '메시아'라 불렀습니다.
이에 대해 파텔은 "나는 그리 어리석지 않다. 이토록 큰 일이 나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조차 알지 못할 만큼은"이라며 겸손하게 답했습니다. 즉, 이 모든 성과는 자신 혼자의 공이 아니라 함께 힘을 합친 수많은 사람들의 결실이라는 뜻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