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57. 사르다르 파텔, '가시관'을 쓰고 카라치 회의 의장을 맡다

57. 사르다르 파텔,  가시관 을 쓰고 카라치 회의 의장을 맡다

분노한 청년들 속에서 시작된 카라치 대회

간디지와 인도국민회의 지도자들이 카라치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했을 때, 수천 명의 청년들이 그들에게 거센 항의 구호를 퍼부었습니다. 이런 극한의 상황에 대처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위기의 순간, 간디지는 파텔에게 마치 '가시관을 쓰는' 것과 같은 회의 의장직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사르다르(파텔)는 첫 연설만으로 지도자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던 수천 명의 청년들의 분노를 잠재우는데 성공했습니다.

파텔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한 평범한 농부를 이 대회의 의장으로 선출해 주셨다면, 부디 구자라트가 지금까지 독립운동에서 해온 일에서 영감을 받아 나라를 해방하는 위업에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무장혁명을 신봉하던 청년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투쟁 방식에 대해 여기서 아무 말하겠다는 것이 아니지만, 그들의 애국심과 용기, 그리고 희생 정신 앞에서는 고개를 숙입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운동 중단에 대한 청년들의 반발

사르다르는 "우리는 간디-어윈 협정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를 희망하지만,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운동은 반드시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자 많은 청년들이 일어나 운동 중단이 독립 달성을 늦출 것이라고 항의했습니다.

이에 사르다르는 담담하게 답했습니다. "지금 간디지의 나이는 63세이고 내 나이는 56세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조국의 독립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니, 여러분보다 더 조급하고 더 걱정스럽습니다." 사르다르의 이 진심 어린 말에 청년들의 분노는 가라앉았고, 그들은 자리에 앉았으며 대회는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간디-어윈 협정과 영국의 숨겨진 의도

간디는 국민 여론을 무시하고 상당한 양보를 하며 어윈 총독과 협상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제국주의 영국이 협상에 응한 진짜 이유는 국민회의원들을 감옥에서 풀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목적은 런던에서 진행 중인 원탁회의에서 인도연방 결성 결의안을 통과시켜 인도인들에게 새 헌법을 강요하고, 이를 통해 백인 정부가 인도 전역을 '합법적' 방식으로 착취할 수 있는 면허를 손에 넣는 것이었습니다.

간디는 이 회의에 국민회의의 유일한 대표로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1931년 12월 1일, 이 원탁회의는 어떤 해결책도 없이 막을 내렸습니다. 암베드카르 박사가 연방의회에서 열등계급(Depressed Classes)에 대한 의석 할당을 요구했고, 지나(Jinnah)는 무슬림 의석 할당을 끝까지 고집했기 때문입니다.

번왕국의 반대와 재개된 탄압

각지 번왕국의 통치자들 역시 인도연방의 성립을 반대했습니다. 연방이 출범하면 자신들의 번왕국이 소멸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 원탁회의의 특징적인 성과는 장래 인도연방을 위한 헌법 제정이 논의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국민회의가 원탁회의에서 정부 측 입장을 지지하지 않자, 인도 전역에서는 다시금 탄압의 물결이 시작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