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앙리 4세(Henri IV): 프랑스 종교전쟁을 종식시킨 부르봉 왕조의 첫 번째 왕

프랑스 국왕 앙리 4세의 생애

훗날 프랑스의 왕이 되는 앙리 4세는 베아르 지방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세례를 받을 때는 가톨릭 신자였지만, 어머니의 영향 아래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개신교(위그노)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프로테스탄트가 프랑스의 군주가 되는 것을 거부한 성직자 동맹(가톨릭 리그)과 유럽 열강에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1589년 앙리 3세가 암살되면서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왕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했고, 앙리는 1593년 생드니에서 위그노 신앙을 버리고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이로써 '파리는 미사 한 번 값어치가 있다'라는 유명한 일화와 함께 그는 왕좌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즉위와 낭트 칙령

1594년 샤르트르에서 대관식을 거행한 앙리 4세는 1598년 4월 13일 낭트 칙령을 반포했습니다. 이 칙령은 프랑스 내에서 개신교 예배를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조치로, 무려 36년 동안 나라를 피바다로 몰아넣었던 종교전쟁의 공식적인 종결을 의미했습니다.

같은 해인 1598년에는 스페인을 포함한 가톨릭 동맹과도 강화 조약을 체결하며 대외적으로도 평화를 정착시켰습니다.

국가 재건과 절대왕정의 기초

부르봉 왕조 최초의 국왕으로 즉위한 앙리 4세는 점진적으로 절대왕정의 토대를 마련해 나갔습니다. 특히 쉴리(Sully) 같은 뛰어난 참모들을 곁에 두고 통치를 진행했는데, 쇠약해져 있던 왕국은 그의 손길 아래 빠르게 부흥하여 번영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치세는 비극으로 막을 내립니다. 1610년 5월 14일, 앙리 4세는 라바야크(Ravaillac)라는 자의 칼에 찔려 암살당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사후, 미래의 루이 13세의 어머니였던 왕비 마리 드 메디시스가 섭정으로서 국정을 수행하게 됩니다.

생몰년

1553년 12월 13일 ~ 1610년 5월 14일

신분 및 직위

프랑스 국왕
정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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