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테어 1세(795~855): 카롤링거 제국 분열의 중심 인물
로테어(Lothair, 795~855)는 샤를마뉴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경건왕 루이의 장남으로, 위대한 카롤링거 제국이 셋으로 갈라지는 비극의 한가운데 서 있던 인물입니다.
후계자로 지명되다
817년, 경건왕 루이는 Ordinatio Imperii(제국 분할 칙령)이라는 법적 문서를 통해 로테어를 제국의 정식 후계자로 지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로테어는 823년 공동황제로 대관받았으며, 동생들인 루트비히와 페팽은 후계 순위에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대머리 카를의 등장과 형제 간의 갈등
그러나 경건왕 루이의 재혼에서 태어난 대머리 카를의 출생은 상속 구도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루이는 막내 카를에게 더 넓은 영토를 물려주며 그를 편애했고, 이에 반발한 로테어는 반란을 일으켰다가 829년 이탈리아로 추방되었습니다. 이후 루트비히와 페팽이 아버지를 폐위하고 로테어를 옹립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833년 '거짓의 들판' 사건), 형제들은 곧 입장을 번복하여 루이를 복위시켰습니다(834년).
폰트누아 전투와 스트라스부르 서약
838년 페팽이 사망하자 대머리 카를과 독일인 루트비히는 힘을 합쳐 맏형에게 맞섰습니다. 841년 폰트누아-퓌제 전투에서 승리한 두 사람은 842년 스트라스부르 서약으로 동맹을 공고히 하며 로테어에 대한 압박을 강화했습니다.
베르됭 조약과 중프랑크 왕국
843년 체결된 베르됭 조약으로 제국은 세 형제에게 균등하게 분할되었습니다. 로테어는 황제 칭호를 유지하면서 북해부터 로마까지 이어지는, 아헨을 포함한 중간 지역(중프랑크 왕국)을 차지했습니다. 그는 교회 영토를 자신의 통치 아래 두고 로마에 대한 권위를 행사했으며, 재위 기간 내내 노르만족의 침입에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퇴위와 최후
건강이 크게 악화된 로테어는 855년 프륌 조약을 통해 왕국을 세 아들인 루이 2세, 카를, 로타르 2세에게 나누어 물려주고 퇴위했습니다. 이후 프륌 수도원으로 은퇴하여 같은 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기본 정보
- 생몰: 795년 ~ 855년
- 신분: 국가 원수
- 직위: 중프랑크 왕국의 왕
- 직위: 서(西)로마 황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