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빌링허스트의 생애
기예르모 빌링허스트 앙굴로(Guillermo Billinghurst Angulo)는 1912년부터 1914년까지 페루 공화국의 대통령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기예르모 에우헤니오 빌링허스트와 벨리사리아 앙굴로 투델라의 아들로, 1851년 7월 27일 아리카에서 태어나 1915년 6월 28일 세상을 떠났다. 초기 교육은 고향에서 마쳤으며, 이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주해 생활하다가 아버지가 사망한 1868년 페루로 돌아와 가업인 초석(질산염) 사업을 물려받았다.
그는 알폰소 우가르테와 친분이 깊었고, 정계 입문 초기부터 니콜라스 데 피에롤라를 지지했다. 이러한 연유로 피에롤라와 함께 1874년 '탈리스만' 원정, 1876년 야캉고 봉기, 그리고 1877년 '우아스카르' 호 사건 등 주요 정치 활동에 동참했다. 칠레와의 전쟁(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북부군 참모장으로 임명되었고, 1881년 모로 솔라르 방어전에 참전한 뒤 포로로 체포되어 칠레로 압송되었다.
정치 경력
빌링허스트는 카세레스 정권에 맞선 피에롤라의 혁명을 도왔고, 혁명이 성공한 직후인 1895년 제1부통령이자 타크나 지역구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이듬해인 1896년에는 상원 의장을 맡았다. 이후 칠레 주재 전권공사로 임명되어 빌링허스트-라토레 의정서에 서명했는데, 이는 안콘 조약에 명시된 대로 타크나와 아리카의 귀속을 결정짓는 국민투표 실시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었다.
그는 민주당의 저명한 당원으로서 1899년 대통령 유력 후보로 거론되었고, 1908년에는 당 재건을 주도했으며, 1909년에는 리마 시장으로 선출되었다. 시장 재임 기간 내내 서민 계층을 위해 헌신했는데, 수도의 여러 거리를 포장하고 라 빅토리아까지 전차 노선을 개통했으며, 산 헤로니모 시립 사격장을 일반에 개방하고 새로 조성된 플라사 이탈리아 광장에 안토니오 라이몬디 기념비를 세웠다.
1912년 그는 안테로 아스필라가와 대결하여 압도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페루 일러스트라시온> 잡지는 5월 19일 열린 첫 집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빌링허스트 씨가 주관한 시위는 웅장하고, 강력하고, 장대하고, 압도적이었다. 2만 명이 그를 따랐다. 반면 아스필라가 씨의 집회은 처참하고, 애처롭고, 초라했다. 단 2천 명만이 그와 함께했다.”
1913년 1월, 그는 칼라오 항만·부두 노동자들에게 하루 8시간 근무제를 시행하는 결의안을 발표했으며, 해당 노동자의 4분의 3이 찬성한 파업에 대해서는 경찰의 보호를 보장하는 조치도 취했다. 이러한 행보 덕분에 한때 '페루 최초의 노동자'로 불렸고, 민중을 향한 정치적 소신 덕분에 민중들은 그에게 '판 그란데(Pan Grande, 큰 빵)'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그러나 그의 적대 세력인 시빌리스타파와 레히스타파는 의회와 언론을 통해 그의 통치를 방해했고, 심지어 니콜라스 데 피에롤라조차 그를 지원하지 않았다. 그 결과 빌링허스트는 의회의 시빌리스타 다수파, 정당들, 군부, 나아가 여론마저 등지게 되었다. 그는 전직 대통령 레기아를 추방하고 의회 해산까지 위협했으나, 결국 1914년 시빌리스타파의 지원을 받은 오스카르 R. 베나비데스 대령이 주도한 군사 쿠데타로 축출되었다. 그는 이키케로 추방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저술 활동
호탕하고 신랄한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대학 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폭넓고 탄탄한 학식을 갖춘 인물이었다. 그는 출판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셰익스피어 여러 작품의 일부 구절을 번역하기도 했으며, 공식 문서 외에도 다음과 같은 저작을 남겼다.
- 초석 문제에 대한 개관 (1875)
- 알폰소 우가르테 추도 화환 (1880)
- 데사과데로강과 안데스 고원의 군사 정찰 (1880)
- 타라파카 지리 연구 (1886)
- 타라파카 출생 페루인의 법적 지위 (1887)
- 이키케 항구의 상수도 공급 (1887)
- 타라파카의 초석 철도 (1888)
- 타라파카의 초석 자본 (1889)
- 산간 지역 농업 탐사 규정 (1898)
- 타라파카의 초석 및 붕사 입법 (1903)
- 파티요스 철도 관련 문서 (1908)
- 심정수(아르테시아 우물)를 이용한 관개 (1909)
- 연설 강령 (1912)
- 국민에게 고함 (1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