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레이몽드 드 라로슈 남작부인, 세계 최초의 여성 면허 비행사

엘리스 레온틴 데로슈(Élise Léontine Deroche), 즉 레이몽드 드 라로슈 남작부인(Baroness Raymonde de Laroche, 1882~1919)은 1910년 조종사 면허를 취득한 세계 최초의 여성 비행사입니다.

레이몽드 드 라로슈 남작부인, 세계 최초의 여성 면허 비행사

항공의 개척자들

가죽공예 장인의 딸로 태어난 엘리스 데로슈는 1882년 8월 22일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운동과 신체 활동을 사랑했으며, 자동차와 오토바이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취향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예술 분야로 진로를 정해 회화와 조각, 특히 연극에 몰두했습니다. 무대에 오르기 위해 그녀가 택한 예명이 바로 '레이몽드 드 라로슈'였습니다.

오빌과 윌버 라이트 형제, 그리고 친구였던 레옹 들라그랑주(Léon Delagrange) 등 초기 항공 개척자들의 위업은 레이몽드에게 강한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당시까지 여성이 조종사 면허를 취득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항공 개척자 샤를 부아쟁(Charles Voisin)과의 만남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그녀의 간곡한 요청에 부아쟁은 레이몽드에게 비행 조종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여성 최초의 면허 비행사

1909년 10월, 샬롱앙샴파뉴(Châlons-en-Champagne) 군사 기지 비행장에서 레이몽드는 첫 비행 수업을 받았습니다. 당시 비행기는 단좌식이라 지상에서 지시를 내리는 샤를을 뒤로한 채 그녀가 직접 조종간을 잡아야 했습니다. 견습 조종사는 이륙해서는 안 되었지만, 한 바퀴 돌고 나자 그녀는 스스로 날 준비가 되었다고 확신했습니다. 샤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레이몽드는 지상 몇 미터 상공으로 이륙하여 정확하고 안정적이며 매끄러운 조작으로 300미터를 단독 비행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레이몽드는 꾸준히 훈련을 이어갔고, 1910년 3월 8일 여성 최초로 조종사 면허를 취득했습니다. 프랑스 에어로클럽(Aéro-club de France)이 발급한 그녀의 면허 번호는 36번이었습니다. 이후 마리 마르방(Marie Marvingt), 엘렌 뒤트리외(Hélène Dutrieu), 잔 에르뵈(Jeanne Herveux), 잔 팔리에(Jeanne Pallier) 등 다른 여성 개척자들이 빠르게 그 뒤를 따랐습니다.

에어쇼와 두 번의 대형 사고

면허를 손에 넣은 레이몽드는 이집트, 상트페테르부르크, 부다페스트, 루앙, 랭스 등지에서 열린 초창기 에어쇼에 참가했습니다. 파일럿들 사이 유일한 여성이었던 그녀는 큰 관심을 모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니콜라이 2세 황제로부터 직접 축하를 받기도 했습니다. 실제 귀족 작위가 없음에도 언론과 행사 주최 측은 그녀를 '남작부인' 레이몽드 드 라로슈로 소개하기 시작했고, 이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레이몽드 드 라로슈 남작부인, 세계 최초의 여성 면허 비행사

그러나 1910년 7월, 시연 비행 중 그녀의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레이몽드는 회복 가능 여부조차 불확실할 정도의 중상을 입었습니다. 다시 일어나 조종대에 설 때까지 무려 2년이 걸렸습니다. 이듬해인 1912년 9월에는 샤를 부아쟁이 목숨을 잃은 자동차 사고를 겪으며 그녀 역시 또다시 중상을 입었습니다.

코드롱 시제기와 비극적 최후

레이몽드 드 라로슈 남작부인, 세계 최초의 여성 면허 비행사

1913년 11월 25일, 레이몽드 드 라로슈 남작부인은 4시간 이상의 비행 성적으로 프랑스 에어로클럽의 페미나 컵(Coupe Fémina)을 수상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여성의 비행이 너무 위험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그녀는 군용 운전병으로 자원해 전선과 후방 사이에서 장교들을 운송하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레이몽드는 에어쇼와 경기에 복귀했습니다. 1919년 6월에는 고도 3,900미터, 이어 4,800미터 비행과 323킬로미터 이상의 거리 비행에 성공하며 고도 및 거리 기록을 여러 차례 경신했습니다.

1919년 7월 18일, 레이몽드는 코드롱(Caudron) 사의 시제 비행기에 조종사 또는 부조종사로 탑승했습니다. 그녀는 최초의 여성 시험 비행사가 되는 것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착륙 과정에서 비행기가 앞으로 뒤집히며 추락했고, 조종사와 부조종사는 현장에서 즉사했습니다. 세계 항공사에 한 획을 긋던 개척자의 삶은 37세의 나이에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