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타르 1세: 카롤링거 왕조의 황제

로타르 1세(Lothair I, 795~855)는 경건왕 루트비히(루이 1세)의 장남으로, 817년 제국의 단독 상속자로 선포되면서 제국 통치에 참여했습니다. 이 시기 그는 이탈리아로 파견되었으며, 교황으로부터 황제 대관식을 거행하여 명실상부한 황제가 되었습니다.
아버지 경건왕 루트비히와의 갈등
경건왕 루트비히가 막내아들 대머리 카를에게 유리한 새로운 영토 분할 계획을 추진하자, 로타르 1세는 이에 강하게 반발하며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동생인 독일인 루트비히와 아키텐의 피핀과 손잡고 830년과 833년 두 차례에 걸쳐 아버지를 폐위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두 번 모두 귀족들의 반발과 정치적 압박 속에 결국 왕관을 아버지에게 되돌려주어야만 했습니다.
푸테네 전투와 베르덩 조약
840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로타르는 제국의 단독 황제가 되었고, 이 지위를 바탕으로 두 동생의 영지까지 병합하려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동생들은 서로 힘을 합쳐 맞섰고, 841년 푸테네앙푸제(Fontenay-en-Puisaye) 전투에서 로타르를 격파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패배한 로타르는 결국 843년 베르덩 조약(Treaty of Verdun)을 수용해야 했습니다. 이 조약으로 카롤링거 제국은 셋으로 분할되었으며, 로타르는 황제 칭호를 유지하는 대신 유럽 북부에서 중부 이탈리아까지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좁은 영토인 로타링기아(Lotaringia)를 할당받았습니다. '로타르의 땅'이라는 뜻의 이 지역명은 오늘날 프랑스의 로렌(Lorraine) 지방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습니다.
말년과 죽음
로타르는 만년에 건강이 크게 쇠약해져 제위를 내려놓고 수도 생활을 선택했으며, 855년 라인란트 지방의 프뤼름(Prüm) 수도원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사후 로타링기아는 세 아들인 루도비코 2세, 로타르 2세, 프로방스의 카를에게 다시 분할되었고, 이러한 잦은 분할은 카롤링거 제국의 점진적인 약화로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