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판초 피에로(Pancho Fierro): 19세기 리마의 삶을 수채화로 담아낸 페루의 대중화가

프란시스코 피에로 팔라스(Francisco Fierro Palas, 1809~1879)는 '판초 피에로(Pancho Fierro)'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페루의 대중화가입니다. 그는 1809년 리마에서 아버지 니콜라스 피에로(Nicolás Fierro)와 어머니 카르멘 팔라스(Carmen Palas)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회화에 대한 재능은 타고난 듯하지만, 세련되지 못한 기법은 정식 교육 없이 독학으로 그림을 익혔음을 보여줍니다. 그의 예술 활동은 늘 손재주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간판과 투우 포스터를 그리고, 크리스마스 마굿간 장식용 작은 인형을 빚고, 벽 장식을 만드는 일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는 수많은 수채화에 리마의 다채로운 생활상을 담아냈습니다. 모든 사회 계층과 직업군의 사람들을 폭넓게 묘사한 이 작품들은 19세기 중후반 페루 수도의 일상 풍습을 생생하게 전하는 귀중한 기록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판초 피에로의 주요 작품

햄 장수, 누가 장수, 부뇨엘(꿀 튀김 과자) 장수, 플라세라(placera, 과일·채소 행상), 안티쿠초(꼬치구이 요리) 장수, 비스킷 장수, 아이스크림 장수 등 다양한 길거리 상인들이 그의 작품에 등장합니다. 또한 '춘초스(chunchos)' 춤, '팔랏스(pallas)' 춤, '악마의 소리' 같은 민속 무용 장면 역시 생동감 있게 그려냈습니다.

비록 해방 운동이 격하게 일던 격변의 시대를 살았지만, 이 시기를 직접적으로 그린 수채화는 많지 않습니다. 앙헬리카 팔마(Angélica Palma)에 따르면, "칼라오 공방전 참전자", "아르헨티나-칠레 연합군 장교", "해방군 소속이었던 나", "사파타 중사"라고 적힌 몇 점이 예외적이라고 합니다. 그는 대신 복면을 쓴 사람들, 노예, 초릴료스(Chorrillos) 바닷가로 피서를 온 사람들, 인디오, 성직자 등 당대 리마의 풍속을 담은 비용풍(costumbrismo) 화풍을 선호했습니다.

작가 자신은 브로지(Broggi) 상점에서 수채화를 직접 판매했으며,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작품들은 프랑스 외교관 레온시오 앙그랑(Leoncio Angrand)이나 러시아 출신 민족지 학자 레오폴트 슈렌크(Leopoldo Shrenk) 같은 여행가와 수집가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덕분에 오늘날 그의 작품은 미국, 러시아, 프랑스, 아르헨티나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페루 국내에서는 전통주의 문인 리카르도 팔마(Ricardo Palma)가 가장 방대한 컬렉션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이 컬렉션은 현재 리마 시립 미술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판초 피에로의 죽음

판초 피에로는 1879년 7월 28일, 도스 데 마요(Dos de Mayo) 자선병원에서 극심한 빈곤 속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자신의 수채화에 서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화가의 작품이 그의 것으로 잘못 귀속되는 경우가 있었고, 작품의 제목과 제작 연도 또한 완전히 신뢰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1975년에는 마누엘 시스네로스 산체스(Manuel Cisneros Sánchez)가 이 혼혈 출신 화가에 대한 연구서 『판초 피에로와 1800년대의 리마』를 출간했는데, 여기에는 다수의 풀컬러 복제화가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