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블라스코 누녜스 벨라: 페루 초대 부왕의 생애와 비극적 최후

블라스코 누녜스 벨라(Blasco Núñez Vela)는 스페인 제국 치하 페루의 초대 부왕(Virrey)입니다. 그는 1495년경 스페인 아빌라에서 태어났으며, 타블라디요 영지의 영주였던 루이스 누녜스 벨라와 도냐 이사벨 데 비야르바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습니다.

귀족 가문 출신의 군인

누녜스 벨라는 오랜 역사를 지닌 귀족 가문의 후손으로, 산티아고 기사단의 기사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다양한 요직을 거쳤는데, 1530년에는 오랑의 창기병 대장을 맡았고, 이후 카스티야 갤리선 및 군인 총감독관, 말라가의 코레히도르(지방 행정관), 나바라 국경 총감찰관 등을 역임했습니다. 그는 도냐 브리안다 데 아쿠냐와 결혼하여 세 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부왕 임명과 신대륙행

1543년 4월 리마 부왕으로 임명될 당시 그는 이미 고령이었습니다. 이전에도 해군 대장 신분으로 단거리 항해를 통해 아메리카를 방문한 적은 있었습니다. 부왕으로서 연봉 5천 두캇을 받게 되었으며, 1543년 11월 3일 화려한 행차와 함께 산루카르 데 바라메다를 출발했습니다. 그는 직접 함대의 지휘권을 맡았고, 새로 설립된 리마 아우덴시아(왕립 재판소)의 판사들(오이도르)과 여러 저명한 인사들을 동행시켰습니다.

신법 시행과 강압적 통치

그는 1544년 1월 10일 놈브레 데 디오스에 도착한 뒤 파나마로 이동하여, 아우덴시아 판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카를 5세의 1542년 칙령인 '신법(Nuevas Leyes)' 시행에 착수했습니다.

티에라 피르메 지협을 떠나 페루로 항해한 그는 3월 툼베스에 상륙했고, 이어 피우라를 거쳐 트루히요에 이르렀습니다. 산미겔에서 그랬던 것처럼 트루히요에서도 수도원이 보유한 인디오들을 해방시키고, 피사로파와 알마그로파 간 분쟁에 개입했던 많은 인물들을 배제했습니다. 이후 바랑카로 향했습니다.

리마에서는 그의 도착을 희석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그는 성대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법 시행 과정에서 모든 불만과 청원을 독재적이고 폭력적인 태도로 일축했습니다. 그의 불관용과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의심은 극에 달해, 전임 총독 바카 데 카스트로를 감옥에 가두는 것은 물론, 부왕의 폭정을 두려워한 여러 정복자들의 도주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왕실 재무관 일란 수아레스 데 카르바할을 직접 살해하는 일까지 저질렀습니다(1544년 9월 13일).

고잘로 피사로의 반란과 최후

이러한 행보는 페루 정착민들의 무장 봉기를 촉발했습니다. 그들은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고잘로 피사로를 지도자로 추대했습니다. 리마 아우덴시아는 1544년 9월 18일 누녜스 벨라를 체포하여 즉시 산로렌소 섬으로 압송했습니다. 같은 달 24일 파나마로 출항했지만, 그의 감호를 맡았던 오이도르가 그를 석방하면서 몰락한 부왕은 툼베스로 가서 병력을 규합하고 반군 피사로를 격파해 권위를 회복하려 했습니다. 한편 고잘로는 1,200명의 무장 병사를 이끌고 1544년 10월 28일 리마에 개선 입성했습니다.

북부 해안에서 여러 차례 전역을 벌인 끝에, 1546년 1월 18일 아냐키토(Añaquito) 전투에서 부왕군과 고잘로 피사로의 군대가 충돌했고, 누녜스 벨라는 부상을 입은 채 포로로 잡혔습니다. 카르바할은 그의 목을 베게 했으며, 고잘로는 그를 키토의 대성당에 안장하라고 명했습니다. 이후 그의 유해는 고향인 아빌라의 산토 도밍고 교회로 옮겨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