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 다르크(Jeanne d'Arc)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성이자, 전 세계적으로 신화적인 존재로 추앙받는 인물입니다. 구국의 영웅이자 전쟁 지도자, 그리고 가톨릭 교회의 성인으로서 그녀는 백년전쟁 기간 동안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성자들의 목소리와 대천사 미카엘의 계시

자크 다르크(Jacques d'Arc)와 이자벨 로메(Isabelle Romée)의 딸인 잔은 1412년경, 로렌 지방의 동레미(Domrémy) 인근 가족 농장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를 아는 이들은 그녀를 매우 경건하고 성실한 소녀로 묘사했습니다.
1337년부터 프랑스 왕국과 잉글랜드 왕국 사이에 백년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잉글랜드의 프랑스 영토 정복이 이어지자, 프랑스 국왕 샤를 6세는 아들(훗날의 샤를 7세)이 자신의 친자가 아니라는 의심을 받아 왕위 계승권에서 배제하고, 잉글랜드 국왕을 후계자로 삼는 조약을 맺게 됩니다. 1422년 샤를 6세가 사망하면서, 샤를 7세는 정통성을 잃은 채 '왕세자(돌팽)'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열세 살이 되던 해, 잔 다르크는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성녀 카타리나와 마르가리타, 그리고 대천사 미카엘의 음성이었습니다. 이들은 그녀에게 경건할 것과 프랑스 왕국을 구원하라는 사명을 내렸습니다.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 그녀는 이 계시를 나이 많은 사촌에게 털어놓았고, 사촌은 그녀를 보쿠레르(Vaucouleurs)의 수비대장 로베르 드 보드리쿠르(Robert de Baudricourt)에게 데려갔습니다. 처음에는 그녀를 믿지 않던 보드리쿠르도, 잔의 놀라운 카리스마와 명성이 퍼지자 결국 호위병을 붙여 왕세자가 머무는 시농(Chinon)으로 보냈습니다.
오를레앙 포위전 돌파와 파리 공략
이때부터 잔 다르크는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남장을 했습니다. 1429년 2월 25일, 시농에서 왕세자 샤를을 알현한 그녀는 네 가지 예언을 전했습니다. 오를레앙 해방, 랭스(Reims)에서의 국왕 대관식, 파리 탈환, 그리고 오를레앙 공작의 석방이었습니다. 교회 당국의 심문과 정조 검증(성녀만이 성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 등 엄격한 검증을 거친 후, 샤를은 그녀에게 구호 물자 수송대를 맡겨 오를레앙으로 보냈습니다.
오를레앙 도착 당시, 시민들은 열렬히 환호했으나 장군들은 회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굳건한 신앙과 자신감, 카리스마는 사기가 꺾인 프랑스 군대에 새로운 용기를 불어넣었습니다. 그 결과 1429년 5월 8일, 잉글랜드군은 오를레앙 포위를 풀고 퇴각했습니다. 루아르 계곡이 해방되자, 잔은 왕세자를 로슈(Roches)로 데려가 대관식을 강력히 권유했습니다.
1429년 7월 17일, 랭스 대성당에서 샤를 7세가 샤르트르 대주교 르노에 의해 프랑스 국왕으로 즉위했습니다. 프랑스 왕들의 전통적인 대관식 장소인 이곳에서의 즉위식은, 샤를 7세에게 잃어버렸던 정통성을 되찾아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잔 다르크는 파리 공략을 주도했으나, 이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 시기 잔의 정확한 군사적 역할은 불분명합니다. 주요 의사결정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파리 공략 실패 후, 그녀는 독자적인 군대를 이끌고 전투에 나섰으며, 그녀의 카리스마와 용기에 감복한 병사들의 충성심을 얻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여러 차례 부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이단 재판과 화형, 그리고 복권
1430년 5월 23일, 콩피에뉴(Compiègne) 전투 중 잔 다르크는 부르고뉴군에 포로로 잡혔고, 그해 11월 잉글랜드군에 매각되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보베(Beauvais) 주교 피에르 코숑(Pierre Cauchon)에게 넘겨져 이단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됩니다. 1431년 2월 21일부터 5월 23일까지 진행된 재판에서, 잔이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보이자 검찰은 남성 복장 착용, 교회 불복종, 악마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혐의를 씌웠습니다. 극심한 공포 속에서 5월 24일 십자가 표시로 과오를 뉘우치는 서약을 했으나, 이틀 만에 번복했습니다.
1431년 5월 30일, 루앙(Rouen)의 구시장 광장(Place du Vieux-Marché)에서 잔 다르크는 산 채로 화형당했습니다. 그녀의 나이 열아홉 살이었습니다.
1456년, 재심 재판을 통해 첫 판결이 무효화되고 잔 다르크의 명예가 회복되었습니다. 이후 20세기 들어 가톨릭 교회로부터 시복(1909년)과 시성(1920년)을 거쳐 정식 성인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중세의 작가 크리스틴 드 피장(Christine de Pisan)이나 프랑수아 비용(François Villon) 같은 문호들도 이미 그녀의 업적을 칭송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