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서아프리카의 강국이었던 가나 왕국은 풍부한 금을 바탕으로 번영을 누린 나라입니다. 이 글에서는 가나 왕국의 경제, 종교, 역사적 위상을 다룬 대표적인 객관식 기출문제 6개를 엄선했습니다. 문제를 먼저 풀어본 뒤 마지막의 정답표와 해설로 실력을 점검해 보세요.
문제 01 – Mackenzie 2017/2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타르칼라에서 가나 도시에 이르려면 척박한 사막을 세 달 동안 걸어서 건너야 한다. 가나 땅에서는 금이 모래 속에서 당근처럼 자란다. 그리고 일출 무렵에 수확한다.”
– 이븐 알파키흐(Ibn al-Fakih), Alberto da Costa e Silva, 『아프리카의 초상: 고대부터 19세기까지』, 상파울루: Companhia das Letras, 2012, 32쪽에서 인용
“[가나]는 금의 나라다. (...) 마그레브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으며 누구도 이의를 달리하지 않는 사실이니, 가나의 왕은 궁전에 무게 30아라텔(약 14kg)에 달하는 금괴 하나를 보유하고 있다. 이 금괴는 불에 녹이거나 도구로 가공하지 않은, 신이 창조한 그대로의 것이다. 흥미롭게도 금괴에는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구멍이 뚫려 있어 왕의 말을 묶어 두는 용도로 쓰인다.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신기한 이 보물은 왕만이 소유하며, 왕은 이를 두고 수단 지역의 모든 군주들 앞에서 자랑스러워한다.”
– 알이드리시(Al-Idrisi), 앞의 책, 37쪽에서 인용
위 글들은 유럽 중세 시대에 아프리카의 가나 왕국을 직접 목격한 아랍 여행자들이 남긴 기록이다. 발췌문의 내용을 분석할 때 옳은 설명은?
(A) 왕국의 경제적 발전과 통치자의 다신교적 신정 권력 모두에서 경탄과 찬사를 받았다.
(B) 지나치게 많은 귀금속과 통치자의 전제적 권력 앞에서 방문객들에게 낯선 이질감을 안겨 주었다.
(C) 문명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던 대륙에서의 발전을 여행자들이 이해하지 못해 혼란을 주었다.
(D) 금의 부와 유일신 신앙을 바탕으로 발전하여, 그곳을 지나던 여행자들의 평가에서 밀렸다.
(E) 금이 가져다 준 압도적인 부와 정교한 정치·사회 질서 모두에서 방문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문제 02 – Instituto Machado de Assis 2018 / 루이스 코헤이아 시청(PI) 역사 교사
가나 왕국은 오랜 세월 아프리카와 유럽의 지중해권에 한 가지 생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며 명성을 얻었다. 이 생산물은 무엇인가?
(A) 다이아몬드
(B) 금
(C) 구리
(D) 철
문제 03 – GROW 2018 / 상 도밍고스두아제이탕 시청(MA) 역사 교사
가나의 상업 경제가 전성기를 맞았을 때, 왕국의 경제적 팽창을 이끈 두 핵심 교역품은 무엇이었을까?
(A) 밀과 천
(B) 말과 밀
(C) 콩과 노예
(D) 금과 노예
문제 04 – GROW 2017 / 샤발 시청 인문과학
쿰비살레(Kumbi Saleh)를 수도로 삼은 가나 제국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부유하고 번영한 제국 가운데 하나였다. 북아프리카 민족 등 외세의 잦은 개입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입지 덕분에 9~10세기에 걸쳐 오랜 번영과 안정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제국의 쇠퇴와 몰락에는 종교적 요인도 한몫했다. 그 내용으로 옳은 것은?
(A) 대다수 백성은 요루바의 신들을 숭배한 반면, 지배층은 소닌케 계통의 신앙만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B) 가톨릭 선교사들이 가나 지도층과 유대를 맺어 개종을 이끌었지만, 백성들의 저항으로 주민들이 전통 신앙을 지킨 이웃 왕국들로 떠났기 때문이다.
(C) 이슬람을 믿는 베르베르인과의 상업적 유대가 강하고 영향력이 컸기에, 가나 지도층의 의사와 무관하게 인구 상당수가 이슬람으로 개종했기 때문이다.
(D) 북아프리카에서 이슬람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가나가 이슬람 신앙을 거부하면서 상업적 힘이 약화되었고, 이는 수도의 쇠퇴로 이어져 이슬람계 베르베르인의 침공 빌미가 되었기 때문이다.
문제 05 · 06 – 아래 지문을 읽고 답하시오
“타르칼라에서 가나 도시에 이르려면 척박한 사막을 세 달 동안 걸어서 건너야 한다. 가나 땅에서는 금이 모래 속에서 당근처럼 자란다. 그리고 일출 무렵에 수확한다.”
– 이븐 알파키흐(Ibn al-Fakih), 앞의 책, 32쪽에서 인용
문제 05 – 팔마스 시청 SEMED(역사) 2013
가나는 사하라 남부와 남유럽, 중동을 잇는 이슬람권 횡단 사하라 무역의 중요한 물자 공급지였다. 왕국의 경제적·정치적 성장을 가능하게 한 수출품의 조합으로 옳은 것은?
(A) 금과 은
(B) 금과 천
(C) 금과 소금
(D) 금과 대추야자
문제 06 – 팔마스 시청 SEMED(역사) 2013
1957년 독립하면서 영국령 골드코스트 식민지는 ‘가나’라는 새 국명을 채택했다. 이 명칭은 무엇에서 유래한 것인가?
(A) 오늘날 모리타니 남부에 자리했던 소닝케 왕국
(B) 오늘날 나이지리아 남부에 자리했던 하우사 제국
(C) 오늘날 앙골라 북부에 자리했던 콩고 왕국
(D) 현재 가나 영토 북부에 자리했던 가나 왕국
정답
01 – E
02 – B
03 – D
04 – D
05 – C
06 – A
핵심 해설
가나 왕국은 왕도 역시 ‘가나’라 불렀으며, 9~10세기에 제국으로서의 절정기를 맞았다. 지리적으로는 오늘날 모리타니에 해당하는 지역에 위치했다. 왕국의 기틀을 마련한 민족은 소닝케(Soninquê)였기에, 역사학계에서는 이 정치체를 ‘소니케 왕국’이라고도 부른다.
아랍 여행자들의 기록이 보여 주듯 가나는 금을 상징으로 할 만큼 압도적인 부를 축적했고, 왕을 정점으로 하는 체계적인 권력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사하라 사막을 가로지르는 장거리 무역망에서 금과 소금의 교환은 왕국 경제의 핵심이었으며, 노예 역시 중요한 교역품이었다. 다만 북아프리카의 이슬람화가 진전되면서 이슬람 수용 여부를 둘러싼 갈등이 커졌고, 이는 상업적 위상의 약화와 함께 베르베르 세력의 침공이라는 결과로 이어져 왕국 쇠퇴의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