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리카 전쟁(Brasilica War)은 설탕 전쟁(Sugar War)이라고도 불리며, 1630년 네덜란드가 설탕 무역에 대한 관심 때문에 브라질 북동부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 공격을 감행하면서 시작된 전쟁입니다.
마티아스 드 알부케르키(Matias de Albuquerque)의 지휘 아래 포르투갈계 브라질인들은 물론 흑인과 원주민들도 함께 네덜란드에 맞선 수많은 게릴라전을 전개했습니다. 이들이 집결한 장소는 '아라이알 두 봉 제수스(Arraial do Bom Jesus)'로 명명되었으며, 이곳은 1654년까지 이어진 게릴라 작전의 중앙 지원 거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게릴라 저항과 '느린 전쟁' 전략
원정이 계속 실패에 처하자 알부케르키는 헤시피(Recife) 카피타니아를 장기간 방어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느린 전쟁(Guerra Lenta)' 전략을 채택했습니다. 1633년에는 아포가두스(Afogados) 요새가 함락되면서 네덜란드군에게 자유로운 진입로가 열렸습니다. 같은 해 7월 3일, 알부케르키는 포르투갈-브라질군의 철수 과정에서 격렬한 충돌을 피하기 위해 병력과 함께 아직 남아 있던 지역 주민들을 이끌고 철수했습니다.
마우리시우 드 나사우의 통치와 '황금기'
1635년, 당시 포르투갈이 스페인의 지배 아래 있었기에 스페인은 약 30척의 선박으로 구성된 함대를 파견해 정복된 영토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상황에 대비했습니다. 한편 페르남부쿠(Pernambuco)에서는 마우리시우 드 나사우(Maurício de Nassau)의 지휘 아래 네덜란드가 정복 지역의 원주민 저항 거점들을 차례로 격파했지만, 정치 평의회가 나사우의 정복을 공식 인정한 것은 1637년 1월 28일에야 이루어졌습니다. 이후 나사우는 이 지역에 새로운 통치 체제를 확립했습니다.
그는 포르투갈 출신 평의원들을 대신해 판사들을 임명하고, 카피타니아를 여러 구역(district)으로 세분화했으며, 이곳에는 훗날 네덜란드 평의회가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나사우의 통치 기간 동안 포르투갈계 브라질인과 네덜란드 사이에 평화가 정착하면서 이 시기는 브라질 역사에서 '황금기'로 불렸습니다. 1644년 5월 6일, 나사우는 행정부의 최고 직위에 올라 그 지역의 최고 권위자가 되었으나, 결국 정부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수복 전쟁과 네덜란드 지배의 종언
1654년에는 수복 전쟁(War of Restoration)이 벌어졌습니다. 포르투갈-브라질 군대는 여러 영토를 탈환하는 데 성공했고, 마침내 1월 27일 브라질에서 네덜란드의 지배를 완전히 몰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