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거울아, 말해봐… 유리 거울은 어떻게 인간의 '자아'를 깨웠는가

유리 거울 없는 르네상스를 상상하기란 어렵습니다. 자신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없었다면, 인간은 스스로를 하나의 '개인'으로 인식할 수 있었을까요? 인문주의와 개인주의를 '발명'할 수 있었을까요? 물론 연못에 비춰 보거나 금속을 연마해 만든 거울을 쓰는 방법은 언제든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혁명을 일으킨 것은 오직 유리 거울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역사 기록 속에는 이 획기적인 발명에 관한 정보가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거울아, 말해봐… 유리 거울은 어떻게 인간의  자아 를 깨웠는가

거울을 들고 곁에 선 시녀와 함께 화장대 앞에 앉은 귀부인. 1325~1335년경 영국 필사본 삽화

중세의 금속 거울: 천 년의 유산, 그리고 한계

중세는 금속 거울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았고, 초기에는 형태를 다양화하는 데 그쳤습니다. 이런 소품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존재해 온 것이어서 새로움이라 부를 수 없었으며, 주로 궁정과 상류층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귀부인의 차림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물건은 허리에 차거나 목에 걸고 다니는 작은 휴대용 거울이었습니다. 이미 초기 중세부터는 전통을 본받아 극히 비싸고 화려하게 장식된 거울들이 제작되었습니다. 교황 보니파시오 4세는 은 거울을 노섬브리아 왕비 에텔버그에게 선물로 보냈고, 유럽 곳곳의 왕실과 공가(公家) 보물 목록에서도 값비싼 거울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거울과는 전혀 닮지 않은 물건들이었습니다. 거울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 즉 비추는 사람의 모습을 제대로 반영하는 일조차 매우 제한적으로 수행되었습니다. 진짜 변화는 오직 유리 거울만이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거울아, 말해봐… 유리 거울은 어떻게 인간의  자아 를 깨웠는가

16세기 초 회화에 등장하는 손거울

“유리 거울 같은 건 없다”던 장인들

12세기에 장인 기술 핸드북을 집필한 베네딕토회 수사 테오필루스는 유리의 다양한 용도를 상세히 설명하면서도, 정작 유리로 거울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1266년에 저술한 로저 베이컨 역시 청동·강철·은 거울만을 언급합니다. 또 다른 저자는 13세기 말의 저작에서 거울 제작 공방을 ‘대장간’이라 불렀는데, 여기에 쓰인 재료가 무엇이었는지는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15세기,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유리 거울인가

그런데 한두 세기만 지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미 15세기에는 유리 거울이 당연하게 구할 수 있는 물건처럼 보였습니다. 독일에서는 이 무렵 오흐스나우겐(Ochsenaugen), 즉 ‘소의 눈’이라 불리는 볼록한 유리 거울이 생산되었습니다. 유리 구(球) 안에 주석·안티모니·수지의 혼합물을 채워 넣고, 굳은 뒤 잘게 잘라 작은 렌즈처럼 만든 것이었습니다. 반영이 정교하지 못하고 크기가 작아 용도가 제한적이었지만, 빠르고 비교적 저렴하게 대량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적어도 포켓용 거울은 서서히 대중적인 제품이 되어갔습니다. 15세기에는 불린 유리로 만든 둥근 거울이 크라쿠프 도시 귀족(파트리치)들의 가정에서도 상당수 발견됩니다. 서유럽, 특히 네덜란드에서는 이 시기 커다란 벽걸이 거울이 유행했습니다.

13세기의 장인들은 유리 거울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15세기에는 좀더 두둑한 지갑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울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 놀라운 변화는 어떻게, 그리고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거울아, 말해봐… 유리 거울은 어떻게 인간의  자아 를 깨웠는가

거울은 빠르게 예술 속 모티프가 되었다. 여기서 신랑 부부의 초상은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 그려졌다 (1434)

뉘른베르크의 조합, 무라노의 장인, 그리고 단테의 증언

1383년, 뉘른베르크에는 유리 거울을 만드는 장인 조합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확인됩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보다 거의 백년 앞선 기록이 나타납니다. 이미 14세기 초(어쩌면 그보다 더 일찍부터) 베네치아 인근 무라노 섬의 장인들이 납을 입힌 유리로 거울을 만드는 기술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문헌 자료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단테의 『신곡』에는 납을 입힌 유리가 언급되는데, 이 작품은 1308~1321년에 쓰였습니다.

더 놀라운 점은, 후대의 자료들이 테오필루스와 로저 베이컨이 ‘그들의 시대에 이미 분명히 존재했을 발명’을 몰랐음을 보여준다는 사실입니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수도사였던 뱅생 드 보베(Vincent de Beauvais)는 1250년경, 유리와 납으로 만든 거울이 모든 거울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고 기록했습니다. 그 이유는 ‘유리는 투명성 덕분에 빛줄기를 더 잘 받아들인다’는 것이었습니다. 판유리 거울 제작법은 1200년 이전부터 알려져 있었으나, 실제로 활용되는 경우는 드물었고 이를 아는 장인도 많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슬람 스페인이 원조였을까?

1973년 출간된 『거울의 역사(Dzieje zwierciadła)』의 저자 미에치스와프 발리스(Mieczysław Wallis)는 이렇게 결론 내립니다. “초기 중세는 거의 전적으로 금속 거울을 사용했다. 10~11세기 교체기의 아랍 교과서들 역시 강철과 은 거울만을 안다”고요. 하지만 그의 주장은 완전히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중세에 유리 거울이 처음 만들어진 곳은 무슬림이 지배하던 스페인 지역으로, 그 시기는 이미 10~1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카셈 아즈람(Kasem Ajram)은 저서 『이슬람 과학의 기적(The Miracle of Islam Science)』에서 이를 다룹니다. 기독교 유럽에서는 이렇게 이른 시기의 유리 거울 사용 사례를 찾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혁명적인 발명은 아마도 이슬람 세계에서 유럽으로 전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야기의 끝? 아니, 천 년 전으로

이것으로 이야기가 끝일까요? 거의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가자면, 중세의 이 모든 파란만장한 행보는 사실 유리 거울 발명으로부터 거의 천 년 뒤에 벌어진 일입니다. 이런 거울은 기원후 1세기, 시돈(현 레바논)의 로마인들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대부분 작은 휴대용 거울이었는데, 15개 세기 뒤 독일에서 유행한 포켓 거울과 놀랍도록 비슷한 형태였습니다.

참고 자료

기본 자료:

  1. Mieczysław Wallis, 『거울의 역사와 문화 각 분야에서의 역할(The History of the Mirror and Its Role in Various Fields of Culture)』, Art and Film Publishers, 바르샤바 1973, 31~33쪽.

보충 자료:

  1. Kasem Ajram, 『이슬람 과학의 기적(The Miracle of Islam Science)』, Knowledge House Publishing, 1992.
  2. Mark Pendergrast, 『Mirror Mirror: A History of the Human Love Affair with Reflection』, Basic Books, 2004.
  3. “Mirrors”, Medieval & Renaissance Material Culture.
  4. Miranda Anderson 편, 『The Book of the Mirror: An Interdisciplinary Collection Exploring the Cultural Story of the Mirror』, Cambridge Scholars Publis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