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당나귀에 얹어 마을을 돌렸다: 근세 유럽의 가정 문제 '바로잡기' 의식

프라이버시의 시대, 그러나 예전에는 아니었다

우리는 대도시의 콘크리트 아파트 단지에서 살면서 옆집이나 맞은편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른다. 프라이버시의 축제라고나 할까! 그러나 과거에는 사정이 달랐다. 한 거리의 모든 사람이 서로를 알았고, 네 벽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공적인 사안이 되어 여론의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집안의 추한 사정들은 어떠했을까? 글쎄, 그것들은 공개적으로 '씻겨졌고', 때로는… 당나귀 등 위에서 말이다.

고정관념의 희생양이 된 당나귀

안타깝게도 제목의 주인공인 당나귀는 고정관념의 희생양이 되었다. 성경에 등장하는 당나귀는 겸손하고 부지런했으며, '온순하고 유순한 짐승'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당나귀처럼 고집스럽다', '죽은 당나귀처럼 멍청하다'는 식으로 이 짐승을 부른다. 게다가 15~16세기에는 이 가련한 동물이 방종과 음탕함의 상징이 되기까지 했다. 이런 험악한 문화적 함의 앞에서 당나귀는 조롱 의식에 동원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의식의 진짜 주인공은 당나귀가 아니었다.

15~18세기의 이상적인 가족상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이상적인 가족 모델은 남편, 아내, 자녀로 구성된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은 현명하고 부지런해야 한다. 부부는 서로 충실하며 서로 창피를 주지 않는다. 모든 일은 집 문 안쪽에서 처리하고, 모든 갈등도 그 안에서 해결하는 것이다. 좋다. 그럼 이상은 알겠는데, 실제 현실은 어땠을까?

사생활에 발을 들여놓은 여론

소읍, 마을, 동네 혹은 도시의 한 거리를 지배하던 여론은 신발을 신은 채 부부의 삶에 발을 들여놓았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결정하는 것도 바로 그 여론이었다. 게다가 무질서한 공동체 구성원을 '앉혀 세우거나' 그들의 가족 관계를 '바로잡는' 탁월한 관습적 방법들도 존재했다. 부부싸움이 집 밖으로 새어 나가거나, 이웃들이 전통적 가장이 아내의 슬리퍼 밑에 얌전히 엎드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만 하면, 소동이 시작되었다.

이제 프로방스로 눈을 옮겨보자. 끝없이 펼쳐진 라벤더 밭과 잘 익은 포도의 무게에 휘어진 햇볕 가득한 포도밭의 이미지로 더 잘 알려진 땅이지, 집안 싸움의 무대로 알려진 곳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곳의 만연한 목가적 정취가 언제나 지배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저 여자, 헤로디아스냐!"

1762년, 프랑스 어느 소도시에서 직물 장수를 하던 레몽 드 블라지(Raymond de Blasy)라는 신사는 선술집에서 카드 한 판으로 기분 전환을 찾았다. 그는 조용히 테이블에 앉아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유희에 빠져들었다. 그때 그의 사랑스러운 아내가 나타났다. 그녀는 남편을 몰래 게임에서 떼어 놓으려 했다. 심지어 그럴듯한 핑계까지 대었다 — 레몽을 급히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고. 남편은 속임수를 간파했지만 동료들을 떠날 생각이 없었고, 담담하게 게임을 계속할 작정이었다. 블라지 부인은 완전히 폭주했다. 그녀는 선술집에 있는 모든 이들의 카드를 찢어 버리기 시작했고, 남편을 붙잡아 집으로 끌고 가 버렸다.

당나귀에 얹어 마을을 돌렸다: 근세 유럽의 가정 문제  바로잡기  의식

목가적인 프로방스의 마을. 글쎄, 모든 이에게 그토록 목가적이지만은 않았을 테지…

불쌍하게도 두들겨 맞은 도박꾼에게 굴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선술집의 목격자들은 아내 앞에서 소극적으로 굴복한 죄를 물어 그를 '당나귀에 얹어 마을을 돌리겠다'고 위협했다. 그리고 그들은 반드시 실행했다. 이틀 후, 공식 포고꾼이 엄숙히 선포했다. 다음 주일에 드 모구베르 수도원(de Maugoubert Abbey) 앞을 지나 당나귀 행렬이 열리니, 구경하고 싶은 이는 모두 참석하기 바란다고 (로제 샤르티에 편집, 『사생활의 역사: 르네상스에서 계몽주의까지』 인용).

행진, 행진, (거의) 모두를 위한 잔치…

일요일이 되자 레몽 드 블라지는 예의도 없이 조롱당했다. 마을에서 행렬이 시작되었다. 북 두 개를 메고 나선 소년들이 행렬의 선두를 장식했다. 그 뒤를 두 바퀴 수레가 따랐고, 수레 위에는 목청껏 불행한 남자에 대한 고발을 읊조리는 가수들이 올라탔다. 수레 뒤에는 당나귀와 말이 이었고, 그 위에는 배우 두 명이 탔다. 당나귀 위에는 레몽을 상징하는 인형이 얹혀 있었다. 한편 아내 역할을 맡은 배우는 — 여장을 하고 물레축을 든 남자 — 말에 올라탔다.

행렬이 진행되던 어느 순간, '블라지 부인'은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두 번째 배우를 당나귀 위에서 끌어내린 뒤 물레축으로 내려치기 시작했다. 이윽고 행렬 참가자들은 또 다른 장면을 재현했다 — 선술집에서의 그 기억에 남는 카드 판, 이번에는 당나귀 등 위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지칠 줄 모르는 '아내'가 달려 들어 카드를 찢고 또다시 물레축 검술을 개시했다.

뭐… 부러울 것 없는 운명이다. 한편 이 소극에는 일종의 의식적 의미도 담겨 있었다. 정절을 저버린 아내, 뿔이 난 남편, 슬리퍼에 깔린 남편, 심지어 재혼을 원하는 홀아비나 과부까지 당나귀에 얹혔다. 이 모든 것은 낙인을 찍고 공동체의 거부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의식 행렬의 모든 참가자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글쎄, …오직 포로만 제외한다면 말이지만.

참고 자료

  • 로제 샤르티에(Roger Chartier) 편집, 『사생활의 역사: 르네상스에서 계몽주의까지』, Ossolineum, 브로츠와프(Wrocław), 199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