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을 당시, 레닌그라드 주민들은 자신들에게 어떤 운명이 닥쳐올지 전혀 알지 못했다. 선전에 젖어 살던 그들은 독일군이 곧 패배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히틀러는 이 대도시를 완전히 포위해 굶겨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렇게 해서 872일간의 악몽이 시작되었다.
포위된 수백만 명 중 한 사람은 16세 소년 유라 리아빈킨이었다. 그는 어머니와 여덟 살 배기 여동생 이라와 함께 살았다. 스탈린이 대규모 피난을 허락하지 않았던 터라, 대부분의 레닌그라드 시민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도시를 떠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소년은 후세에 놀라운 기록을 남겼다. 바로 자신의 내면과 벌인 처절한 싸움을 담은 일기였다. 일기의 상당한 분량은 알렉시스 페리(Alexis Peri)의 책 '레닌그라드, 포위된 도시의 일기'에 소개되어 있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가족의 유일한 생계책은 어머니였지만, 검소한 식량 배급을 받으려면 몇 시간씩 줄을 서야 하는 일은 유라의 몫이었다. 그래서 그는 여동생보다 자신이 더 많이 먹어야 한다고 느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어머니는 항상 먼저 한 입 드신 뒤에야 우리에게 한 입씩 나눠 주셨다. 빵을 나눌 때 내 조각이 이라 것보다 반 그램이라도 무거우면, 이라는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이런 불공평하다는 감정이 커지면서, 유라는 1941년 11월 어머니에게 여동생 몫의 배급표를 자신에게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그것이 여덟 살 난 여동생에게 사형 선고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거절하자, 이번에는 가족의 비축 식량을 몰래 축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일기에 꼼꼼하게 적어 남겼다.
"이번에도 몰래 숨겨둔 비축물에서 버터와 양배추를 훔쳐 먹었고, 어머니가 나와 이라에게 사탕을 잘게 나눠 주시는 모습을 갈망하는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음식 한 조각, 빵 부스러기 하나까지 두고 다투었다. 내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1941년 12월자 다른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틀 전 어머니와 이라가 단것을 사 오라고 나를 보냈다. 나는 사탕 대신 설탕을 탄 코코아를 샀을 뿐만 아니라(이라가 먹지 않으면 내 몫이 더 남을 것이라 계산했다), 그중 절반—열흘은 버틸 수 있는 하찮은 600그램—을 제 몫으로 챙기고는, 누군가 내 손에서 코코아 세 봉지를 훔쳐 갔다는 거짓말을 지어냈다."
"집에 돌아와서는 눈물을 글썽이며 이 모든 코미디를 연기했고, 단 한 봉지도 숨기지 않았다고 어머니께 소년단원의 명예를 걸고 맹세했다. 그러고는 (...) 어머니의 눈물과, 단것이 없어 안타까워하시는 절망의 모습을 무심하게 바라보며 몰래 그 코코아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두 가지 일이 하루빨리 일어나기를"
그러나 유라를 인간적 감정이 없는 괴물로 여긴다면 큰 오해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죄책감은 그를 하루도 편히 못 하게 했고, 그는 고통을 종이에 쏟아냈다.
"나는 불의의 바닥까지 추락했다. 양심의 목소리가 잦아들고, 불의와 불명예가 군림하는 곳으로. 나는 어머니께 미안한 아들이자 이라에게 미안한 오빠다. 나는 이기주의자다. 고통의 시기에 가장 가깝고 소중한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인간이다. (...) 나는 악한 인간이다. 나에게 삶은 이미 끝났다. 나를 기다리는 것은 삶이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행동에 대한 혐오감은 더욱 깊어졌다. 1941년 12월 15일, 소년은 이렇게 고백한다.
"두 가지 일이 하루빨리 일어나기를 바란다. 내가 죽는 것, 그리고 어머니가 이 일기를 읽는 것. 어머니가 양심 없는 흉측하고 배신적인 존재라며 나를 저주하고 나와 연을 끊어 주기를. (...) 나는 너무 느리게, 너무 느리게 죽어간다…."
사흘 뒤, 유라는 마지막 일기를 남겼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도시에서 철수할 수 있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자신은 너무 허약해 집결지까지 갈 힘이 없었고, 가족 역시 그를 움직여 줄 여유가 없었다. 이윽고 그는 포위전의 수십만 희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어머니 역시 볼로그다로 이송되는 도중에 생을 마쳤다. 전쟁을 살아남은 것은 이라뿐이었고, 그녀는 오빠의 기록을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접하게 되었다.
유라의 기록이 특별한 이유는 뚜렷하다. 알렉시스 페리가 '레닌그라드, 포위된 도시의 일기'에서 강조했듯, 가족 간의 도둑질에 대해 리아빈킨만큼 솔직하고 정직하게 쓴 일기 작가는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출처
- 알렉시스 페리(Alexis Peri), 레닌그라드, 포위된 도시의 일기(Leningrad: Journals from the Besieged City),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