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혁명은 100년 일찍 일어났을지도 몰랐다
컴퓨터의 역사라고 하면 흔히 1940년대를 떠올리지만, 사실 최초의 컴퓨터 설계는 그보다 무려 100년 이상 앞선 시기에 등장했습니다. 한 명의 괴짜 영국 수학자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만들어진 컴퓨터에 필적할 수 있는 기계를 설계했던 것입니다. 당시 기술적 여건만 뒷받침되었더라면 IT 혁명은 실제보다 100년 넘게 일찍 도래했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을 숫자로 보던 괴짜 수학자, 찰스 배비지
찰스 배비지(Charles Babbage, 1791~1871)는 말그대로 엉큼한 괴짜였습니다. 그에게 세상이란 숫자와 수학 법칙의 집합체였습니다. 우편 서비스의 수익성을 분석하고, 암호를 해독하고, 핀(바늘) 제조 공정을 낱낱이 해부하는가 하면, 나무 나이테에 매료되어 어디를 가든 소와 돼지의 호흡 길이와 심박수까지 재곤 했습니다.
1860년에 촬영된 찰스 배비지
정부의 지원을 받은 '차분 기관'
1823년, 이 기묘한 교수는 영국 정부를 설득해 자신의 새로운 집착 대상인 '차분 기관(Difference Engine)' 개발 자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간단히 말해 이 기계는 수학 문제에 답하는 장치로, 감자값만큼 저렴하게 로그표를 생산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배비지는 이 놀라운 기계를 계획하고 제작하는 데 20년을 보냈지만, 설계도는 끊임없이 복잡해졌고 초기 목표는 계속 확장되었습니다. 제임스 글레이크(James Gleick)는 저서 『정보(The Information)』에서 이렇게 적습니다.
10년 후, 기계는 높이 60cm에 수직 축 6개와 수십 개의 톱니바퀴를 갖추고 6자리 숫자까지 계산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또 10년이 지난 후에는 종이 위의 설계도가 예측하기를, 이 장치는 부피 약 45세제곱미터, 무게 15톤, 부품 2만 5천 개로 이루어질 것이었고, 설계도 자체만 해도 약 35제곱미터나 되었다.
기계가 한 번 회전할 때마다 수십 개의 기계 부품이 작동해야 했고, 설계자는 이들에게 '디지털 다이얼', '검지손가락', '엄지손가락', '격발 장치', '갈고리', '집게', '금속 이빨' 같은 추상적인 이름을 붙여야 했습니다. 전체 작동 원리를 설명하려면 수백 페이지의 문서가 필요했고, 그래도 고급 수학 전문가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배비지 차분 기관의 가동 모형. 최종 설계는 이보다 훨씬 거대한 규모를 상정했다. (사진: Allan J. Cronin, CC ASA 3.0)
안타깝게도 배비지에게는 프로젝트 전체를 좌초시킨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끊임없이 수정과 개선을 멈추지 못하는 습관이었습니다. 결국 정부는 참지 못하고 지원을 중단했고, 완성된 차분 기관은 탄생하지 못했습니다. 배비지는 일부 시제품만 겨우 만들 수 있었습니다. 1990년대 초에야 한 과학자 그룹이 이 장치의 가동 가능한 복제품을 완성했습니다. 이 거대한 기계는 사실… 상당히 복잡한 계산기에 불과합니다.
시대를 100년 앞선 '해석 기관'
하지만 정부의 지원 중단은 배비지의 열정을 꺾지 못했습니다. 진정한 천재답게 그는 빠르게 차분 기관을 잊어버리고,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한 능력을 지닌 새로운 장치를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름하여 '해석 기관(Analytical Engine)'입니다.
이것은 복잡한 계산을 수행하고 수학 문제를 폭풍 같은 속도로 풀어내는 구조물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배비지는 오늘날의 작업 메모리(RAM)에 해당하는 '저장소(storage)'와 프로세서(CPU)에 해당하는 '제분소(the mill)'를 갖춘 기계를 구상함으로써 자신의 시대를 크게 앞질렀습니다.
이 기계는 순서 제어, 분기, 반복문을 처리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역사상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램이 바로 이 기계를 위해 탄생했습니다. 설계자는 특수한 천공 카드(punched card)를 통해 기계와 소통하려 했습니다. 이 기계는 수학 법칙의 화신이 될 예정이었지만, 그 이상이기도 했습니다. 제임스 글레이크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배비지는 수천 개의 회전 다이얼에 숫자를 새겼지만, 그 작동은 더 추상적인 차원에서 기호를 표현할 수 있었다. 이 기계는 관련된 어떤 연결 관계든 처리할 수 있었다. 언어를 조작할 수 있었고, 음악을 만들 수도 있었다.
완성되지 못한 꿈, 그러나 멈추지 않는 도전
유감스럽게도 이번에는 후원자를 찾지 못했습니다. 해석 기관은 결코 건설되지 못했지만, 배비지는 상세한 설계도를 남겼습니다. 1837년 작성된 이 문서들은 20세기 말에야 재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2010년, 영국 프로그래머 존 그레이엄-커밍(John Graham-Cumming)이 배비지의 해석 기관을 최소한의 디테일까지 살려 건설하는 '플랜 28(Plan 28)'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1843년 조지 3세 국왕 박물관 개관식에서 전시된 배비지 차분 기관의 일부
그는 이 거대한('기관차보다 큰') 증기 기관으로 작동하는 컴퓨터—1980년대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보다 계산 능력이 1만 3천분의 1에 불과한—가 반드시 작동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레이엄-커밍이 옳은지, 그리고 배비지가 정말 천재이자 최초의 실제 컴퓨터의 창시자였는지 확인하려면 아마 몇 년이 더 걸릴 것입니다.
참고 자료
- James Gleick, 『정보(The Information)』, Wydawnictwo Znak, 2012.
- Jonathan Fildes, "Campaign builds to construct Babbage Analytical Engine", BBC News, 2010년 10월 14일.
- Plan 28 – 배비지 해석 기관 설계 공식 웹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