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5년, 4분의 1세기에 걸친 노력과 전쟁, 그리고 끊임없는 야망의 추구 끝에 폴란드는 마침내 왕국이 되었다. 히폴리트 대주교는 '용감한 볼레스와프'와 그의 아들 미에슈코의 머리에 왕관을 얹었다. 그러나 이 역사적 순간의 주인공은 이들만이 아니었다.
폴란드 최초의 대관식에 관해서는 이미 수많은 책과 논문에서 다루어져 왔다. 그 기록들에 따르면, 교회력에서 가장 중요한 절기인 부활절에 독일에서 익히 알려진 방식대로 '이중 대관식'이 거행되었다고 한다. 오토 2세는 아버지가 생전에 살아 있을 때 왕이 되었고, 심지어 황제의 자리까지 올랐다. 다음 세대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콘라트 2세 역시 오랜 전통에 따라 열한 살 된 후계자에게 왕위를 물려줄 예정이었다.

소위 '오스발트 시편집(Oswald Psalter)' 삽화에 묘사된 성모 마리아의 대관식(10세기).
그러나 1025년에는 결국 이중 대관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피아스트 가문이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순간 세 번째 인물이 왕관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미에슈코 2세의 아내 리헤자, 즉 독일 황제의 조카였다. 그녀는 카롤링거 왕조의 전통과 이어지는 살아 있는 연결고리였던 셈이다.
경건한 종교 의식
이 의식은 순수하게 종교적인 성격을 지녔다. 비록 그 특별한 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상세히 기록한 연대기 작가는 없지만, 다행히도 다른 여성들의 대관식 사례는 수없이 많이 전해진다. 무엇보다 중세 초기의 오르디네스(Ordines), 즉 여성 통치자를 왕비의 지위로 격상시키는 세부 규정을 담은 문서들이 우리 시대까지 보존되어 있다.

14세기 프랑스 미니어처에 그려진 국왕과 왕비의 대관식.
이 문서들은 기도문과 낭독 문구를 모아 놓은 집합체인 동시에, 의식 진행의 일종의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이들은 샤를마뉴의 직계 후계자들 시대부터 만들어졌다. 리헤자가 그니즈노의 새 대주교와 함께 자신의 대관식을 준비할 때, 이 문서들 속에 담긴 전통을 바탕으로 삼았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새로운 사라이자 라헬
오르디네스는 세부적으로 서로 차이가 있지만, 공통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장엄한 의식은 공녀를 일종의 '지상에 강림한 성모의 대리자'로 만들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필멸의 세계에서 그리스도를 대표했다면, 그들의 아내는 하늘의 여왕을 본받아야 했다. 왕실의 신부로서 그들은 억눌린 백성을 보호할 책임을 맡았다. 남편의 정의를 지키고 백성을 위해 중보하는 역할이 기대되었으며, 성경 속 가장 훌륭한 본보기를 따라야 했다.
히폴리투스 대주교는 반드시 자신의 여주인공을 구약성경의 위대한 여인들에 비유했을 것이다. 모든 오르도(Ordo)가 그렇게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리헤자는 사라, 라헬, 레아의 발자취를 따라야 했다. 영적·육체적 순결의 본보기이자, 동시에… 아름다움의 본보기여야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존재감
가장 영향력 있는 대관식 규정집, 즉 9세기 말 랭스 대주교 힝크마르가 편찬한 문서는 여성의 아름다움이 지니는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했다. 군주의 배필은 자신을 아름답게 내보일 수 있어야 했다. 리헤자는 이 점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약간 늦은 시기의 슬라브 대관식 사례들을 보면, 그녀가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예복을 입었음을 알 수 있다. 진짜 도전은 다른 곳에 있었다.
10세기 중반 오토 왕조의 전례서에서는 '왕비 축복 기도'를 찾을 수 있다. 대관식 중에 낭송되는 특별한 기도문이다. 이 기도는 여성의 나약함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수사학적 장치일 뿐이다. 탄식하듯 시작된 글쓴이는 곧바로 여성에 대한 찬양으로 화제를 돌린다. 그리고 그 기준은 매우 높았다. 그는 왕비들에게 유디트와 에스더처럼 되라고 명한다. 최대의 시련 속에서 홀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했던 여인들이었다.

얀 마테이코의 삽화에 그려진 리헤자 여왕.
물론 그들의 싸움은 상징으로만 의도된 것이었다. 갓 왕관을 쓴 군주가 아침 일찍 일어나 아시리아 장군의 목을 베거나(유디트처럼), 선택받은 백성의 학살을 막기 위한 음모를 꾸미기를(에스더처럼) 기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무겁고 금박 입힌 왕관이 리헤자의 관자놀이에 얹히고, 히폴리투스 대주교가 그녀의 이마에 십자 성호를 그었을 때, 여왕은 자신이 순수하게 영적인 싸움에 직면해 있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녀의 눈앞에는 용감한 볼레스와프가 있었다. 창백하고 열에 들뜬 채 시종들의 부축을 받는 그의 모습은 한쪽 발이 이미 무덤에 들어간 듯 보였다… 그의 죽음은 몇 주, 아니 며칠 안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성경에 나오는 것 같은 기적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저 대격변의 홍수가 덮쳐올 뿐이었다.
주요 참고 문헌
이 글은 저자가 저서 『흠 있는 여인들 – 폴란드에 왕관을 씌운 여성들(Damy z skaz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다. 그중 일부는 아래에 제시되어 있으며, 전체 목록은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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