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 가문의 야드비가 여왕은 좋지 않은 예감에 시달리며 교회뿐 아니라 오컬트의 세계에서도 위로를 구했습니다. 그녀가 살던 시대에는 이런 일이 아무도 불쾌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출산의 공포와 점성술에 대한 집착
야드비가는 결혼 12년 만에 임신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두운 생각에 잠긴 그녀는 오히려 최악의 상황을 예감했습니다. 그녀가 남긴 서신에는 산욕 중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임신은 원래부터 갖고 있던 점성술에 대한 매혹을 더욱 짙게 만들었습니다.
여왕을 위해 제작된 플로리안 시편집은 황도대 별자리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그녀가 사용한 신비한 모노그램, 즉 두 개의 M 자가 연결된 형태의 문양은 종교적이라기보다 마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해석도 존재합니다. 인생의 결정적 전환점에서 군주가 점복술의 달인들을 찾아갔다는 사실은 결코 이상하지 않습니다.
바알 사제들에게서 빌려온 방법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폴란드 점성술 차트는 1398년 것으로, 군주의 측근에 있던 한 학자가 작성했습니다. 의사였을 수도 있고 성직자였을 수도 있는데, 교회는 미래를 예측하려는 이들을 여러 차례 박해했지만 야드비가의 시대에는 비판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잦아들어 있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파리 대학교 총장은 신학과 점성술의 완전한 조화를 주장했습니다. 다른 전문가들 역시 호러스코프와 점성술 전체가 성부 하나님께서 창조한 자연철학의 틀 안에 들어온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해석 작업이 필요했던 까닭은, 황도대 별자리를 읽는 방법이 라틴 문명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숨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바알의 예언자들을 처단하는 장면. 19세기 성경 삽화
점성술사들은 아라비아 학자들의 저작을 적극 활용했고, 심지어 그리스도 탄생 이전에 발전한 오컬트 술법까지 차용했습니다. 야드비가가 의뢰한 호러스코프 역시 바빌론의 바알 사제들이 실천하던 기법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고대 신 바알은 교회 사람들의 눈에 허위 의식을 상징하는 존재였으며, 심지어 사탄의 한 얼굴인 벨제붑으로 묘사되기도 했습니다.
폴란드 최초의 호러스코프
여왕은 태어날 아이의 운명이나 건강, 재능에 대해 묻지 않았습니다. 단지 나라의 기대에 부응할지, 즉 아들일지만 알고 싶어 했습니다. 호러스코프 작성자는 별자리의 '남성성'과 '여성성', 달과 태양의 위치, 그리고 차트를 '다스리는' 행성의 성질을 밝히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남편이 침실을 찾았던 드문 밤들을 생생히 기억하던 현명한 여왕의 도움을 받아, 그는 아이가 잉태된 날짜를 1398년 9월 16일로 특정했습니다. 그날은 태양이 지배하는 날이었는데, 태양은 그 열기로 남성을 낳는다고 믿어졌습니다. 게다가 부부의 동침은 역시 불의 별자리로 여겨진 궁수자리의 가호 아래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판결은 하나뿐이었습니다. 자궁 속에서 아들이 자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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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나간 예언
점성술사는 출산 날짜도 정했습니다. 1399년 6월 10일이 그날이 될 터였습니다. 하지만 예측은 빗나갔고, 답은 이레 넘게 기다린 끝에야 나타났습니다. 그동안 황도대의 달인이 내놓은 주요 예언들 역시 틀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사실은 호러스코프의 익명 작성자가 반복이 많고 무엇보다 후회와 불신으로 가득한, 다소 얼버무리는 듯한 메모에서 스스로 인정했습니다.
"나는 열흘째 되는 날 아이가 태어나 아들이라 단언했으나, 딸이 태어났다. 딸은 6월 22일 일요일 오전, 정오 1시간 28분 전에 세상에 나왔다. 나는 주요 징조를 근거로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 예언했다. 남성 별자리에서 잉태되면 자궁 안의 기운이 남성 쪽으로 흐른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머니의 상승점이 떠오르고 있었고, 남성 별자리에서는 물병자리의 달이 작용한다고 이해되었다."
"왕녀가 태어났고 내가 틀렸다. 나는 알지 못했다."
점성술사는 스스로에게 변명할 뿐, 지칠 대로 지친 여왕에게 잘못을 사죄할 길은 없었습니다. 야드비가는 출산 후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어린 딸 엘리자벳 보니파치아가 세상을 떠난 직후인 출산 넉 주 만에 그녀 역시 세상을 떠났습니다.
참고 문헌
이 글은 저자가 '폴란드 제국을 세운 여인들' 집필 과정에서 수집한 문헌과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히 E. 시네진스카스톨로트(E. Śnieżyńska-Stolot)의 야드비가 여왕 아이의 호러스코프('야기엘론 도서관 회보', 53권, 2003년)를 주로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