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노르망디 상륙작전: 날씨 예보가 어떻게 독일군을 속였나 –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1944년 6월 6일, 흔히 '디데이(D-Day)'로 불리는 이 날은 제2차 세계대전의 가장 위대한 날로 꼽힌다. 이날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한 작전은 단 11개월 만에 나치 제3제국과 전 세계를 덮친 악몽을 종식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코드명 '오버로드(Operation Overlord)'의 날짜는 기상 요소들을 면밀히 고려해 결정되었다.

공수부대 작전은 보름달이 뜰 때만 가능했고, 독일군이 설치한 각종 장애물 때문에 공격은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중간 조위 시간에 이루어져야 했다.

이러한 기상 조건들의 조합은 6월 5일, 즉 작전 개시일로 지정된 'D-Day'와 정확히 일치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날씨 예보가 어떻게 독일군을 속였나 –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세 개의 기상 예보 팀

연합군 측에서는 6명의 기상학자가 세 개 그룹으로 나뉘어 디데이 예보를 담당하고 있었다.

a) 위드윙(Widewing) – 미국인 크릭(Krick)과 홀츠먼(Holzman)
b) 영국 해군본부(Admiralty) – 울프(Wolfe)와 호그벤(Hogben)
c) 던스터블(Dunstable) – 더글러스(Douglas)와 페테르센(Petterssen)

노르망디 상륙작전: 날씨 예보가 어떻게 독일군을 속였나 –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미국 팀은 통계적 기상 데이터에 기반한 유추법, 즉 현재의 기상 상황을 과거의 유사한 사례와 비교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들의 예보는 지나치게 낙관적이었고, 그대로 실행되었다면 1944년 6월 5일 대참사로 이어졌을 것이다. 영국 해군본부와 영국 기상청은 작전 연기를 강력히 요청했다.

이 결정에는 기상 분석·예보 분야의 거장이자 20세기 중반 세계적 권위자였던 뛰어난 노르웨이인 스베레 페테르센(Sverre Petterssen)의 역할이 컸다.

6월 5일 새벽, 폭풍우에 젖은 영국의 하늘 아래에서 연합군 예보관들은 아이젠하워에게 '아주 짧은 날씨 호기가 상륙작전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드디어 1944년 6월 6일 화요일, 겨우 견딜 만한 기상 조건 속에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수륙양용 부대가 노르망디 해변에 상륙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날씨 예보가 어떻게 독일군을 속였나 –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노르망디 상륙작전: 날씨 예보가 어떻게 독일군을 속였나 –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이 지도는 독일 기상학자들이 분석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독일 예보관들은 북대서양에서 새로운 폭풍이 몰려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날씨가 너무 나빠 연합군이 상륙을 시도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해 버렸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날씨 예보가 어떻게 독일군을 속였나 –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사진: 던스터블의 방송 장면)

디데이를 둘러싼 두 가지 서사

디데이에 관해서는 두 가지 기록이 문헌을 지배해 왔다.

첫째는 영웅적 서사다. 어빙 크릭과 벤 홀츠먼으로 구성된 미국 팀이 유럽 대상륙을 가능케 한 '강력한' 기상 조건을 찾아냈다는 이야기다.

둘째는 제임스 스태그(James Stagg)가 1971년에 발표한 전형적인 관료적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스베레 페테르센을 크게 분노하게 만들었고, 그는 후에 자신만의 역사적 회고록을 집필했다. 페테르센의 영문 원고는 1974년 노르웨이어 번역본으로 먼저 출간되었고, 2001년에야 영문판으로 세상에 나왔다.

페테르센이라는 인물, 그리고 그의 기여

몇 해 전 필자가 『나비의 이야기』를 집필하던 당시, 이오아니나 대학의 기상학 교수인 디오니시스 메탁사스 씨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1950년부터 1970년까지 그리스 국립기상청(EMY)에서 근무했으며, 영국에서 초기 장기 훈련을 받을 때 페테르센 본인에게 직접 사사받은 인물이다. 아래에서 읽게 될 내용의 상당 부분은 이런 '1차 정보'에 기반한 것이다.

페테르센은 1939년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기상학과 학과장으로 임명되어, 1940년 『기상 분석과 예보』, 1941년 『기상학 입문』이라는 두 권의 저서를 남겼다.

유럽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나치는 노르웨이를 점령했다.

페테르센은 MIT를 떠나, 노르웨이 망명군 대표 고문 자격으로 영국 정부 기상청에서 근무하기로 결심한다. 당시 영국 기상청 청장은 넬슨 존슨 경이었으며, 페테르센은 독일 상공 폭격 예보 작성을 주요 임무로 맡는 부장으로 임명되었다.

이 시기에 페테르센은 훗날 '제트기류(Jet Stream)'로 알려지게 되는 상층부의 강한 바람을 최초로 확인했다.

그는 상층 바람과 지표면 기상 조건 사이의 연관성을 연구했고, 수많은 임무 외에도 장기 예보를 담당했다. 무엇보다 그는 디데이 예보에 참여한 유일한 노르웨이 출신 기상학자였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날씨 예보가 어떻게 독일군을 속였나 –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기상 팀들은 위드윙, 해군본부, 던스터블 세 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페테르센에 따르면 특히 던스터블의 그의 팀과 해군본부는 6월 5일을 상륙일로 정하는 데 반대했고, 브리핑에서 미국 팀의 유추 예보가 충분한 근거 없이 제시된 것으로 드러나자 결국 위드윙의 미국인들은 다수결에 굴복했다.

역사적으로 누가 옳았는지에 대한 평가는 진영마다 달랐다. 그러나 기상계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대중적 인정이었다. 예보 발표 전에 전문가들이 날씨에 대한 의견을 미리 교환하는 관행이 거의 모든 국가 기상청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공식 예보 발표 전에 진행되는 이러한 건설적인 논의와 검토는 오늘날에도 EMY에서 매일 이루어지며, 실질적이고 생산적인 대화의 모델이 되고 있다.

디데이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마지막으로, 대부분이 모를 수 있는 디데이의 숨은 이야기를 하나 소개한다. 작은 나라 그리스도 이 역사적인 날에 빠지지 않았다. 두 척의 그리스 군함, 코르벳함 '톰바지스(Tombazis)'호와 '크리에지스(Kriezis)'호가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한 것이다. 두 함선은 바로 직전까지 대서양에서 호송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GR Reporter의 최근 기사에는 당시 16세였던 디미트리스 안드리오티스(Dimitris Andriotis)의 증언이 실려 있는데, 그는 톰바지스호의 승무원이었다.

그는 저서 『죽음에 죽음을 밟으며』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곳곳에 혼돈이... 완전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해안을 향한 상륙 물결이 30분마다 반복됐죠. 대서양 방벽 뒤에 참호를 파고든 독일군은 기관총, 박격포, 수류탄으로 연합군을 맞이했습니다. 상륙정 일부는 적의 포화에 불타올랐고, 또 일부는 침몰했습니다. 바다에서 헤엄치는 해병들, 지나가는 상륙정의 도움 없이 익사해가는 해병들... 그들은 해안에 도달하고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에 무관심하라는 엄중한 명령을 받은 상태였으니까요."

"우리 함선에는 군사 작전에 개입하라는 명령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독일군은 배가 작다고 무시하고 지나갔죠."라고 그는 덧붙였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날씨 예보가 어떻게 독일군을 속였나 –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그로부터 조금 전인 1943년 말, 그는 독일 점령자들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오이누세스에 있던 부모님의 집을 떠나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 해군에 입대했다. 이후 톰바지스호에 배속되었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베를린으로 자리를 옮겨 파니스 판데미스(Fanis Fandemis)라는 필명으로 지금도 책을 쓰고 있다. "'톰바지스'호의 나와 선원들은 기념 행사에 한 번도 초대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는 말한다. "초대받으면 물론 가겠지만, 훈장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도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요."

안드리오티스는 배 위에서 여러 해를 보냈고, 그중 상당 부분을 요리사로 지냈다. 이는 1975년부터 그가 베를린의 여러 그리스 식당 주방에서 요리를 직업으로 삼으면서 취한 독특한 자세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다리를 넓게 벌리고 몸의 균형을 끊임없이 잡는 자세였다. "특히 폭풍우가 칠 때, 손을 쓰지 않고 요리하면서도 균형을 유지해야 했던 배에서 길러진 습관입니다."라고 그는 설명했다.

안드리오티스는 늘 자신을 놀리고 풍자하는 법을 알았다. 2016년 5월 15일, 89세로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그렇게 살았다. 장례식은 연합군 지도자들과 상륙작전의 마지막 고령 참전용사들이 함께하는 가운데, 바로 그런 시기에 노르망디 해변에서 거행되었다. 1944년 6월 6일 '크리에지스'호에서처럼 외치지는 못했겠지만, '노르망디의 교훈'을 운운하며 새로운 전쟁의 최전선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똑같이 냉소적인 메시지를 남기는 방식으로 말이다.

출처:

https://www.grreporter.info/en/dday_memories_only_greek_survivor/11256
https://www.dunstabletoday.co.uk/lifestyle/dunstable-met-office-forecast-delayed-d-day-invasion-1-6087931
https://www.theexeterdaily.co.uk/news/local-news/exeter-based-met-office-pays-tribute-d-day-meterologists
https://www.metoffice.gov.uk/about-us/who/our-history/d-day-75th-anniversary#Forecastingin1944
『나비의 이야기(The story of a butterfly)』 Kolidas Th.,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