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주비에타 자바츠카(Elżbieta Zawacka), 암호명 "조(Zo)"는 점령지 폴란드에 공수 투하된 병사, 이른바 '치호치엠니(Cichociemni)' 중 유일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뛰어난 비밀 요원으로서 대담하게 체포를 회피하고 용감하게 지하 저항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그녀의 생애에는 놀라운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
엘주비에타 자바츠카 장군은 마리안나와 브와디스와프 자바츠키 부부의 여덟 자녀 중 한 명으로 태어났다. 가족은 처음에 아버지가 조선소에서 일하던 그단스크에 거주했고, 이후 아버지가 법원 서기로 취직하면서 토룬으로 이주했다. 폴란드풍 이름에도 불구하고 브와디스와프는 프로이센 당국의 신뢰를 받는 인물이었다.
그는 프로이센 부사관학교를 졸업했고 군 복무 경력도 갖추고 있었다. 독일 점령지에서 위험한 신호로 여겨지던 가톨릭 신자였음에도, 그는 필요에 의해 현행 규정에 순응했으며 가족들에게도 독일이 도입한 체제에 적응할 것을 요구했다.
엘주비에타 자바츠카의 전기 작가 중 한 명이 강조하듯, 프로이센 분할 지역에서는 폴란드어 사용이 금지되어 있었고 이는 철저히 통제되었다. 특히 공무원들에게 엄격했다. 직장 안팎에서 금지 언어를 사용하는지 감시받았을 뿐만 아니라, 자녀들까지 조사를 받으며 독일어로 기도하는지 확인당했다. 심지어 폴란드 신문에 싸인 빵으로 아침을 먹은 아이들이 교육기관에서 처벌받기까지 했다!

크라쿠프 요르단 공원에 있는 엘주비에타 자바츠카 장군 흉상 (사진: Skabiczewski, CC BY-SA 4.0)
자바츠키 가족이 폴란드어를 사용하는 모습이 들키면 브와디스와프는 즉시 해고될 것이었고, 큰 가족의 가장으로서 그는 이를 결코 감당할 수 없었다. 따라서 엘주비에타의 집에서 폴란드어를 구사하는 이는 아버지, 어머니, 맏언니뿐이었고, 그마저도 어린 아이들이 듣지 못하도록 속삭이며 대화했다. 나머지 자녀들은 오직 독일어만 배웠다.
엘주비에타 자바츠카가 학업을 시작했을 때 그녀는 독일 학교에 다녔는데 꽤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독일어에서 매우 우수한 평점을 받기도 했다). 오랫동안 교육기관은 강력한 독일화의 장이었고, 폴란드어를 사용하면 체벌이 가해졌다. 그 결과 엘주비에타는 독일 문화에 둘러싸인 가운데 자랐다.
폴란드어인가, 독일어인가?
제1차 세계대전과 대폴란드 봉기가 끝난 후, 자바츠키 가족이 살던 땅은 폴란드에 편입되었다. 엘주비에타는 바로 그때서야 비로소 폴란드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1922년 토룬 시립여자김나지움에 입학했지만, 완전히 낯선 언어와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배워야 했던 역사 과목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시간이 지나며 역사 과목은 따라잡았지만, 이후 몇 년 동안 폴란드어 성적은 고작 3점에 머물렀다. 그러나 그것이 학교에서의 유일한 문제는 아니었다.

토룬 다리에 있는 '엘주비에타 자바츠카 장군 다리' 명판 일부 (사진: 퍼블릭 도메인)
폴란드에 편입된 땅에서 많은 독일인들이 떠났고, 그 자리를 국내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채웠다. 그들에게 기존 주민들은 단순히 '독일인'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불렸다. 잘 발달되고 비교적 부유했던 토룬 출신 아이들도 새로 온 이들을 '맨발'이라 불르며 만만치 않게 맞섰다.
게다가 청소년들 사이에는 정치적 갈등도 있었다. 포메라니아 출신 젊은이들은 부모처럼 할레르 장군과 그의 '푸른 군대' 지지자들을 지지했고(할레르가 토룬에 입성했을 때 눈물로 맞이했다), 새로 온 이들의 대다수는 피우수트스키 지지자였다. 신참들은 옛 프로이센 분할 지역의 삶의 방식과 민족 문제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편 '독일인'이라 불린 이들의 압도적 다수는 수십 년간 독일화되어 온 폴란드 가정 출신이었다.

대통령 관저에 있는 엘주비에타 자바츠카 장군 (사진: 폴란드 공화국 대통령실, GFDL 1.2)
엘주비에타 자바츠카 역시 한동안 폴란드어로 자기소개조차 하지 못하고 열까지 셀 수 없었지만, 마음속으로는 확실한 폴란드인이었다. 그녀의 할아버지 카롤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동원되었을 때 베를린으로 떠나는 날을 필사적으로 미루려 애썼고, 마침내 도착했을 때는 전쟁이 이미 끝나 있었다. 생존한 형제 중 맏형인 알폰스(가족들은 '알리'라고 불렀다)는 대폴란드 봉기에 참전했고 이후 폴란드군 장교가 되었다. 언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은 그가 올바른 편에 서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졸업 후 교사로 일하기 시작한 엘주비에타 자바츠카는 스스로가 폴란드인임을 끊임없이 증명해 보였다. 그녀는 일찍부터 여성 군사훈련에 참여하며 그 이념을 깊이 가슴에 새겼다. 전쟁이 발발한 후에는 보조군사근무 여성대대 소속으로 리비우 방어전에 참전했다. 역설적으로 독일화의 시절은 그녀에게 도움이 되기도 했다. 국내군(Armia Krajowa)에서 복무하는 동안 그녀는 제3제국의 국경을 여러 차례 넘나들었는데, '아리아인' 외모와 완벽한 독일어 실력이 큰 무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정보 요원 경력은 별도의 글에서 다룰 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