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억압, 악행의 요새 바스티유. 왕정 공포의 상징이자 그 함락이 프랑스 대혁명의 성공을 이끌었다는 곳. 하지만 과연 모든 것이 사실일까요? 아니면 그저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할까요?
1789년 7월 14일. 분노한 시민들이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감옥인 바스티유를 습격합니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폭군 루이 16세의 명으로 끔찍한 환경에 갇혀 있던 죄수들을 구출하는 것이었습니다. 혁명가들은 바스티유를 함락하고 수감자들을 풀어주며 역사상 가장 유명한 혁명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악과 증오의 중심이 무너져 내린 순간이었습니다.

바스티유에 갇혔던 수감자 중 한 명인 르네 드 르네빌(René de Reneville)은 자신이 수감됐던 곳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잔혹함과 고통과 박해가 울부짖는 성,
그 모습은 지옥 최하층에서도 경탄을 자아낼 것이며
악마도 여기 산다면 전율할 곳이다.
이제 그 성은 야만적인 베르나빌 아래 무너진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는 사실을 지어내고 과장했으며, 바스티유가 진정한 악마의 소굴이라는 인식은 현실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음침한 감옥이라는 신화는 시간이 흐르면서 피비린내 나는 폭동을 정당화해야 할 필요성 속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 모든 것은 조작된 기억과 거짓된 이야기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무시무시한 감옥, 아니면 불평쟁이들의 천국?
드 르네빌 씨는 출옥 2년 후에 출판한 바스티유 관련 저서에서 자신의 고단한 경험을 하소연했습니다. 르네는 시에 등장하는 감옥장 베르나빌 통치 하에 수감형을 선고받은 수많은 인사 중 한 명이었습니다.

분노한 프랑스인들의 눈에 루이 14세는 잔혹한 죄수 박해자로 비쳤지만, 사실 바스티유 수감자들의 처우를 개선한 사람은 바로 그였습니다.
수감자들 사이에는 프랑스 최고의 작가와 언론인들이 많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소한 일들이 문필가들의 펜 끝에서 위대하고 극적인 이야기로 자라난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절규하는 잔혹함'에 대한 이야기에 이끌려 바스티유를 함락한 혁명가들은 그곳에서 반드시 비밀 지하 감옥과 터널, 포승줄, 고문 도구, 피투성이 희생자들을 발견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들은 매우 꼼꼼하게 수색했지만 헛수고에 그쳤습니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찾던 것과 같은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실수를 인정하는 대신 계속 나아갔습니다.
그들은 점령한 감옥에서 병든 권력 체제 특유의 극악무도한 짐승성을 보여주는 풍부한 증거를 발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저녁으로 홍합? 여기에 신선한 부르고뉴 와인 한 잔 어때요? 바스티유 주방이 미슐랭 별을 받을 만한지 궁금해집니다.
사실은 인쇄기의 일부였던 톱니바퀴는 고문 도구로 둔갑했고, 장식용 중세 갑옷은 사형수가 고통 속에 죽어가던 철제 코르셋으로 내세워졌습니다.
이러한 주장이 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확인하려면, 탄식하던 드 르네빌 씨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충분합니다. 불평의 겉껍질을 뚫고 들어가면 시각을 조금 바꿔주는 흥미로운 기록들이 나타납니다. 작가가 바스티유 성벽 안에 들어간 직후 받은 첫 저녁 식사에 대한 언급이 여기 있습니다.
간수는 내 손수건 중 하나로 식탁을 덮고 저녁을 차렸는데, 상추를 곁들인 완두콩 수프는 따뜻하게 데워져 식욕을 돋웠고 노루꾩버섯 1/4개가 함께 나왔다. 한 접시에는 로스트 소스를 듬뿍 곁들이고 파슬리를 뿌린 육즙 가득한 스테이크가, 다른 접시에는 스위트브레드, 수탉 볏, 아스파라거스, 버섯, 트러플로 속을 훌륭하게 채운 만두 1/4개가, 세 번째 접시에는 양혀끗 스튜가 완벽하게 조리되어 올라왔다. 후식으로는 비스킷과 케이크 두 개가 제공되었다.
간수는 와인을 따라야 한다며 우겼다. 훌륭한 부르고뉴 와인이었고, 빵 또한 훌륭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지옥입니다, 진짜 지옥이죠!
그야말로 유일무이한 감옥
건축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바스티유는 전형적인 감옥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방어 요새로 건설되었고 100년이 지난 후에야 기능이 바뀌었습니다. 오해의 소지가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석방하려고 하자 죄수들이 항의하기까지 했습니다! 모든 것은 돈 문제였습니다.

전쟁 참전 용사들이 지키던 낡은 바스티유 점거에 그토록 막대한 의미가 부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루이 16세는 크게 놀랐음이 틀림없습니다.
감옥장은 수감자 한 명당 군주로부터 죄수의 신분에 상응하는 금액을 받았습니다. 가장 높은 금액은 귀족과 정치범에게 배정되었고, 평민 신분의 사람들에게는 가장 낮은 금액이 배정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최저 금액조차 일반 노동자의 일당을 초과했습니다.
게다가 바스티유의 강제 거주자들은 당대 기준으로 훌륭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았습니다. 17세기에 이 요새에 머무는 것은 수감자 가족 전체의 재정 상황을 개선할 기회가 되기까지 했습니다. 모두가 서둘러 떠나려 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던 셈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바스티유 성벽 안팎의 생활은 대체로 매우 자유로웠습니다. 죄수들은 서로 방문하거나 마당에서 공 굴리기 놀이(부치)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가장 저명한 수감자들은 성벽 안에서도 향수, 하인, 술, 반려동물 기르기를 포기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가끔씩 도시에서 하루를 보내고 밤에는 자신의 감옥으로 돌아오는 것이 허용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사실들은 끔찍한 요새에 갇힌 죄수들의 박해자라는 루이 16세에 대한 신화와도 정면으로 모순됩니다. 바로 이 '폭군'이 통치 기간 동안 바스티유와 다른 감옥의 조건을 개선했습니다. 그는 고문 사용과 춥고 습한 지하 감옥 사용을 금지하고, 수감 예상 기간을 명시할 의무를 도입했습니다.

바스티유의 검은 전설은 그곳에 갇혔던 사람들의 작품이었습니다. 시몽 니콜라 링게(Simon Nicolas Linguet)의 『바스티유 일기』나 앞서 언급한 드 르네빌의 『바스티유의 역사』 같은 상상의 이야기와 회고록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런 종류의 책들은 전직 수감자들에 대한 폭넓은 찬사와 동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그들이 새로운 사회 질서의 세계에서 입지를 다질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훌륭하게 해냈기에 오늘날까지도 많은 교과서가 바스티유를 전복된 폭정의 피로 물든 상징으로 묘사합니다. 한편 7월 14일은 지금도 프랑스의 국경일로 성대하게 기념되고 있습니다.
참고 문헌
- Frunck-Bretano Frantz, 『바스티유의 전설(Legends of the Bastille)』, London: Downey and Co, 1899.
- Linguet Simon-Nicholas-Henri, 『바스티유 회고록(Memoirs of the Bastille)』, Chez Jim Books, 2005.
- Pernoud George and Sabine Flaissier, 『프랑스 혁명(The French Revolution)』, London: Secker & Warburg, 1961.
- Weir William,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거짓말(The Greatest Lies in History)』, MUZA SA, Warsaw,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