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세느강에서 건진 미소의 여인, 우리 모두는 그녀를 알고 있다

미소는 대개 따뜻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이 미소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불안을 안겼다. 그것이 한순간 전 스스로 목숨을 끝낸 여인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파리 시민들은 매일처럼 완만하게 흐르는 세느강변을 거니며 대로변의 매혹적인 풍경을 즐기고, 산책하며 지친 몸을 풀었다. 그러나 어느 날, 루브르 박물관 근처 강에서 젊은 여성의 시신이 건져 올려졌다. 시신은 노트르담 대성당 인근에 있던 시립 영안실로 옮겨졌다. 이 수수께끼의 여인은 대체 누구였을까? 그리고 왜 우리 거의 모두가 그녀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 것일까?

공개된 시신

여인의 시신은 부패로 인한 손상이 없었고, 외상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마치 방금 잠들었다가 곧 깨어날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섬세하고 신비로운 미소가 이 인상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시신 상태가 워낙 좋았던 탓에, 젊은 여인은 얼마 전 세느강에 몸을 던져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세느강에서 건진 낯선 여인의 시신은 병리학자들에게 넘겨졌고, 이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은 오래도록 그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세느강에서 건진 미소의 여인, 우리 모두는 그녀를 알고 있다

세느강의 저녁 II

영안실에서 시신 검사가 진행되었지만, 결국 신원은 확인되지 못했다.

가장 널리 퍼진 이야기에 따르면, 부검을 맡은 파리의 의사가 여인의 미소가 너무나 아름답다고 여겨 그 얼굴의 석고 주형, 즉 데스 마스크를 떴다고 한다. 또 다른 설화에서는 한 실무 병리학자가 낯선 여인에게 반해, 그녀를 잊지 않기 위해 기념으로 얼굴 본을 떴다고 전한다. 하지만 정작 그런 석고본이 왜 만들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물론 이후에도 소문은 끊이지 않았고, 사람들은 이 고인의 미녀가 누구인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당시 영안실 건물에는 신원 미상의 시신을 일반에 공개하는 특별한 창이 있었다. 이 글의 주인공 역시 그런 곳에 안치되었다. 오늘날에는 기괴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신원 미상의 시신을 전시하는 것은 당시 유일한 신원 확인 수단이었다.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구일지도 모르는 시신을 찾기 위해 영안실을 방문했고, 동시에 그곳은 시민들의 볼거리, 곧 일종의 오락거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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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미소를 머금은 세느강의 낯선 여인

사회는 서서히, 세느강에 빠져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에게 매료되어 갔다. 그녀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에 대한 추측이 끊이지 않았다. 가족 문제, 병마, 아니면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특히 마지막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죽음의 가면

유명한 석고본의 이미지는 빠르게 퍼져나갔고, 판매도 시작되었다. 누구든 살 수 있었지만, 이 본은 주로 화가와 조각가 등 예술가들의 작업실, 작가와 시인의 서재에서 자주 발견되었다. 석고본의 명성은 멀리 독일까지 전해졌다.

이 여인의 사후 가면을 다룬 최초의 책은 영국에서 나왔다. 리처드 르 갈리엔(Richard Le Gallienne)이 1900년에 쓴 『이미지의 연인(The Lover of the Image)』이다. 이 책은 가면과 함께 방에 틀어박혀, 가면이 눈을 떠주기만을 기다리는 젊은 시인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서며 여인의 이미지는 큰 유행을 탔다. 예술가들과 철학자들이 앞다투어 그녀를 회자했다. 그중 한 사람인 프랑스의 문학평론가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는 코트다쥐르의 자택에 이 가면을 두고, 그녀가 죽음의 순간 믿기 힘들 만큼 거대한 행복을 경험했다고 믿었다.

그녀는 공식적으로 '세느강의 무명여(L'Inconnue de la Seine)', 즉 '세느강의 낯선 여인'이라 불렸다. 놀랍게도 우리는 폴란드 바르샤바 스니아데츠키 거리 23번지 건물 입구 위에서도 그녀의 얼굴을 만날 수 있다. 그녀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롤리타』를 쓸 때 영감을 준 존재이기도 하다. 또한 스타니스와프 그로호비아크는 그녀를 소재로 '세느강의 낯선 여인'이라는 시를 남겼다(시집 『기사의 발라드』 수록).

(…) 그대는 대로변을 따라 몸을 질질 끌며 걸었지,
끈적한 마지막 드레스에 단단히 감싸인 채 —
그리고 아무도 그대를 원하지 않았네. 그 순교자에게서
그대는 자신이 아직 어린아이였다는 사실만 깨달았지.
사랑의 한 조각을 갈망하던
그 다정한 미소, 그대는 세느강 속에서 생각했고,
남겨진 것은 두 번째 지오콘다뿐,
그리고 텅 빈 물음 하나뿐이었네.

익사자에게 내린 입맞춤

우리는 깨닫지 못한다. 사실 우리 거의 모두가 이 젊은 여인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은 아마도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대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차근차근 이야기해 보자.

세느강에서 건진 미소의 여인, 우리 모두는 그녀를 알고 있다

팬텀 안

1960년, 노르웨이의 마네킹 제작자 아스문 라에르달(Asmund Laerdal)은 제임스 엘람(James Elam)과 페터 사파르(Peter Safar)라는 두 의사와 함께 심폐소생술(CPR) 교육용 팬텀을 제작했다. 그런데 새로 탄생할 현대적인 마네킹에 어떤 얼굴을 쓸지 정하는 일이 뜻밖의 큰 난제로 다가왔다. 이때 도움이 된 것이 바로 세느강에서 건져 올린 고인의 데스 마스크였다. 그녀에게는 '안(Anne)'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라에르달은 목숨을 잃은 사람의 인간적인 모습을 팬텀에 상징적으로 새기고 싶었던 것이다.

이 마네킹은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것으로 응급 상황에서 생명을 살리는 법을 배웠다. 독자 여러분도 아마 그중 한 사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