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방탕한 여왕과 권신 팔라틴의 밀월설: 폴란드 통치자의 아내는 정말 남편을 배반했나?

『갈루스 아노니무스 연대기』에는 궁정 실권자와 여왕 사이의 불륜설을 암시하는 의미심장한 구절이 등장한다. 이 무리한 커플은 간통 외에도 적어도 몇 가지 더 추악한 행위를 저질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 험담은 정말 적대 세력이 꾸며낸 허구에 불과했을까, 아니면 어딘가 진실의 씨앗이 숨어 있었던 걸까?

"시에치흐와 여왕에 관해서는 이쯤에서 언급을 멈추겠다." 갈루스 아노니무스는 이렇게 짧게 언급한 뒤, 자세한 내용은 후대의 풍부한 상상력에 맡겼다. 그리고 후대 사람들은 이 은근한 암시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권신 팔라틴과 브와디스와프 헤르만의 두 번째 아내 유디타 슈바벤 공작부인 사이의 불륜 소문이다. 하지만 정말 단순한 소문에 불과했을까?

음모인가, 밀월인가

더 선정적인 기록들을 믿는다면, 11세기 마지막 10년 동안 피아스트 왕조 궁정에서는 온갖 소문이 난무했다고 한다. 소문의 주인공은 바로 헤르만의 새 아내였다. 당대 기준으로 이미 마흔을 넘긴 유디타 공작부인은 '레지나 폴로니아에(Regina Poloniae)', 즉 폴란드의 여왕이라 불릴 만큼 높은 지위에 올라 있었다.

방탕한 여왕과 권신 팔라틴의 밀월설: 폴란드 통치자의 아내는 정말 남편을 배반했나?

유디타에 대한 소문은 사실이었을까? 첫 번째 아내(역시 유디타라는 이름)가 죽은 후, 대관식을 치르지 못한 통치자는 강력한 동맹을 위해 재혼했다. 두 번째 유디타는 폐위된 헝가리 군주의 미망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신성로마황제 하인리히 3세의 딸이었다. 문제는 궁정 로비에서 퍼진 말에 따르면 그녀가 정절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야망 있는 여인에게 호감이 없던 궁정 신하들은 헝가리 시절 그녀의 소행에 대한 소문을 두고두고 입에 담았다.

과거에 간통을 마다하지 않았다면, 비스와 강으로 옮겨온 뒤 습관이 바뀌었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악의적인 이들은 빠르게 그녀의 범죄 동료를 지목했다. 바로 궁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며 많은 이들의 반감을 산 팔라틴 시에치흐였다. 예지 비로줌스키 교수는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시에치흐와 유디타 슈바벤의 관계는 매우 수수께끼 같다. 갈루스는 그들이 어떤 사이였는지 직접 쓸 수 없었고, 의심스러운 성격만을 암시했을 뿐이다. 이는 공작이 팔라틴에게 보인 기이한 의존의 또 다른 증거로 볼 수 있다. 시에치흐가 공작부인과 부정한 관계를 맺었다면 헤르만이 그를 멀리해야 마땅한데도, 갈루스의 기록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의심스러운 관계가 곧 남편을 배신했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당시 유디타는 남자 상속인을 낳는 데 골몰했고, 헤르만의 이전 관계에서 얻은 아들들을 영원히 제거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소문 속에 진실의 씨앗이 있었을까?

너무 나아간 하나의 주장

그제고시 파츠에 따르면, 갈루스는 연대기적 정밀함으로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통치자와 악당 팔라틴(아노니무스는 그를 피아스트 국가의 모든 악의 근원으로 여겼다)에 대한 혐오에 흔들린 자신의 해석을 적어 놓았다. 게라르트 라부다 역시 같은 견해를 공유하며 험담을 일축했다. "곧 두 사람이 정치 이상의 무언가를 나눴다는 소문이 퍼졌다(...). 갈루스 아노니무스는 이 소문을 자신의 연대기에 기록했고, 그 뒤를 따른 역사학자들은 열심히도 비판 없이 이 소문을 되풀이했다."

카밀 야니츠키는 최근 저서 『저주받은 여인들: 폴란드를 파묻은 여성들』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최초의 폴란드 연대기 작가가 무엇에 근거했든, 여왕 재위 중부터 그녀의 적대자들이 무엇을 믿었든, 1090년대 초 유디타와 시에치흐의 불륜은 상상하기조차 불가능하다.
여왕은 이 시기 내내 임신하고, 출산하고, 다시 임신을 시도하는 나날을 보냈다. 그녀의 미래가 달려 있던 남자 상속인의 탄생에 모든 희망을 걸고 있었다. 그녀는 너무나 능숙하고 멀리 내다보는 정치가였기에 스스로의 전망을 해칠 리 없었다. 게다가 어떤 불륜이든 유디타의 아들의 정당성을 훼손하고 그를 상속권에서 밀어낼 위험을 안고 있었다.

갈루스의 수수께끼 같은 기록을 바탕으로 카롤 마레친스키나 야누시 쿠르티카 같은 연구자들이 제기한, 유디타와 시에치흐가 실제로 뜨거운 불륜 관계였다는 가설은 솔직히 말해 다소 과도하게 나아간 결론이라고 봐야 한다. "그래, 그들은 한 쌍이었지만… 연인이 아니라 정치적 동맹이었다"는 논지가 훨씬 진실에 가깝다. 즉, 그들을 묶은 것은 격정적인 욕망이 아니라 헤르만과 그의 아들들을 겨냥한 음모였던 것이다.